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완벽한 적응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루틴을 만들어 생활해오고 있다. 최대한 서로 개입하지 말자는 대원칙 아래,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었다. 점심시간도 미리 정해놓았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다 보니, 배가 고픈 날은 조금 이른 12시에 먹었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대부분 1시쯤 점심을 먹었다. 그전까지는 각자 방에서 묵언수행을 하며, 임무를 마무리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었다. 오후 시간은 말 그대로 '자유시간'이었다. 오전에 마무리 못한 것이 있으면 추가적으로 진행하고, 게임하고 싶은 사람은 게임하고, 학원에 가거나 밖에 일이 있으면 알아서 움직였다. 저녁 식사는 6시. 늦으면 7시에 설거지까지 마쳤다. 코로나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시간이다. 누구보다 그 시간에 내가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귀가가 늦어지다 보니 저녁 시간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집안에서 생활하면서의 어려움을 꼽으라고 하면 단 하나, 경제적인 타격이다. 모임이나 수업이 생각보다 긴 휴가를 맞이하면서 어쩔 수 없는 공백이 생겼다. 공백은 통장의 잔액을 야금야금 먹는 것으로 배를 채워나갔다. 적극적인 태도로 노력하고 재연결을 시도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했다.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어쩌나, 방법이 필요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었다. 심리적 부담감도 내려놓을 방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해법은 '경제적인 부분은 특정 영역으로 따로 떼놓고 생활하자'였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투자가 필요한 시기를 만났다는 생각으로 '밀도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런 측면 바라보니 집안에서의 생활은 마냥 억울한 일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원하는 데이터를 얻는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쓰기'라는 시스템을 통해 '시간관리 시크릿'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유형은 달랐지만 매일 포스팅하여 브런치 북도 완성했고,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여러 가지를 하나, 둘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바로 '제시간에 밥 챙겨주는 엄마','간식 챙겨주는 엄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방송통신대학에 편입했다. 교육학과 공부를 하고 싶어서. 어떤 목적이나 방향이 명확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교육학과가 궁금했고 그러면서 평생교육사 자격증에 관심이 생겼다.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실습도 필요했는데, 둘째를 유치원에 맡겨놓고 병행했었다. 그러다 보니 유치원에 제일 일찍 가서 제일 늦게 나오는 아이가 되는 날이 많았다.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나이에 둘째는 독립심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 입학한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바깥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 둘째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사실 코로나 이전까지의 생활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구'였다. 일에 어느 정도 탄력이 붙으면서 여러 방향으로 확장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저녁을 챙겨주는 일은 별나라 얘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많이 큰 것도 있지만, 스스로 그 자체를 잊고 생활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잘 보면 충분하다고 위로해왔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생겨나는 어쩔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에 집에서 생활하면서 그 아쉬움을 조금 달랜 것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입장에서. 요리 솜씨를 발휘해 특별한 음식, 새로운 반찬을 올려주지는 못했다. 그저 삼시 세끼를 함께 하는 것,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간단하게라도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큰 아이가 등교를 시작했고, 학원을 다니지 시작했다. 둘째도 다음 주부터는 등교를 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에게 간단하게라도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들 일정에 맞춰 저녁을 챙겨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제부터는 나도 슬슬 몸을 움직여야 한다. '밀도 있는 삶'이라는 이름 아래 제쳐두었던 경제적인 문제를 수면 위에 끌어올려 레시피를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게 된다. 아직까지는. 뭐랄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뭔가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생겨날 공백, 그 공백이 6월의 아침을 조심스럽게 하는 건 사실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