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숨차게 읽었다. 숨 막히게 좋았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테드 창의 「숨」, 숨차게 읽었다. 이해하고 따라가기에 바빴다. SF 장르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테드 창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흘러간 부분도 많았지만,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가 한창 서성인 후, 다시 급하게 쫓아간 시간이 더 많았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했던가, 나에게 「숨」은 과학의 현기증이었다. 시간 여행, 평행 자아, 인공지능, 자유의지... 어떤 식으로든 한, 두 번씩은 들어보거나 만났던 주제들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의 조합은 처음이었다. 한정식이면서 세계의 요리를 모아놓은 뷔페 같은 느낌이었다.


과학을 문학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지나친 과학적 전달은 읽는 즐거움을 감소시킨다. 반면 과학이라는 옷을 입었다고는 하나, 문학이 되어버리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분명해진다. 그런 관점에서 「숨」은 잘 빚어진 도자기처럼 적당하게 빠지고, 적당히 들이대는 강약을 가진 작품이었다. 과학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인정과 독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단편 중에서 몇 가지는 마치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어떤 작품은 “만약 정말 이런 일이 생기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수 있지만 바꿀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주의 질서 속에서 내가 숨을 쉬고 살아있는 것이라면? 어떤 의도나 목적이 없이 존재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자유의지를 가지고 한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기계적인 메커니즘에 의한 것이라면?

“인공지능 반려견에게도 애정을 느끼게 될까?”

“완벽한 보모, 기계지만 완벽하다는 보모가 출시된다면,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가?”

“모든 순간이 완벽하게 기록된 리멤이 만들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구입할까?”

“앵무새와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우주와 소통하려는 시도는 지적인 행위일까?

“우주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곳일까?”

“선택의 순간, 다른 선택을 한(동일한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자아가 있다면,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할 것인가? 그의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


오래전, 달 착륙에 성공했을 때 사람들은 20세기 후반에 우주의 여러 곳을 여행하게 될 거라고 예측했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아직은 지구 밖에서 지구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3D프린터가 나왔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마다 3D프린터를 구비하고 새로운 제품을 하나씩 개발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상에서의 변화는 아직 미비하다. 그렇다고는 하나, 낯선 테크놀로지의 세계가 익숙함을 목표로 인류에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숨」은 그런 측면에 예고편처럼 다가왔다. 영화의 예고편이 본편을 잘 설명한 것인지, 과장인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예고편을 통해 우리는 예측이라는 것을 한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 부분은...'

‘내 생각에는 이런 경우에는...'


테드 창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낯선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터무니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열어둬야 할 것 같다.

적자생존의 길을 갈 것인가? 자연선택의 길을 갈 것인가?

「숨」은 문장의 이해를 넘어,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된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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