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生)에 나를 살릴 방법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나는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이다. 스트레스에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억누르는 느낌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이 뇌를 하나씩, 하나씩 점령하는 모습이 불편한 사람이다. 그래서 가능한 스트레스 상황에 나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고 없는 손님, 불청객이 불쑥 찾아오면 빠르게 세포 사이를 건너뛰어 뇌에게 달려간다.

"스트레스 상황이 찾아왔어. 바로, 지금"


예전 같으면 이런 구분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뭘 또 잘못했나?", "아니, 도대체 왜 나에게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어떤 다른 시도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앞, 뒤 살펴보는 것을 떠나 자책하기에 바빴고,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기보다는 상황을 외면할 수 있는 대상이나 사물을 찾는 일에 더 급급했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초조해지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았다. 어떤 과제를 만났다는 느낌보다는 불리한 상황이 연출된 것에 대한 억울함, 이 상황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 두 가지뿐이었다. 무엇과 함께 하면 이 순간을 넘길 수 있을까를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동석한 것은 '술'이었다. 지극히 편파적으로 기억을 조작해 술이 먼저 접근해왔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술, 참 많이 마셨다. 주객전도(主客顚倒)라고 했던가. 술은 손님처럼 비집고 들어와서는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지구를 구할 방안을 협의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기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도 아니었는데, 술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전방위적으로 나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순간적인 감정에 대해 어떤 반박을 하기도 전에 술자리가 만들어져 있었고, 손은 술잔을 채우고 있었고, 술은 나를 채우고 있었다. 모임은 자주, 빈번하게 일어났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는 이유,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었다는 이유, 성적이 마음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친구가 속상하다는 이유, 다툼을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 등 술과의 만남은 연일 계속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견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도로 합석할 수 있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술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기분 좋은 자리를 빛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었고, 술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관계의 확장이었으며 어디에서든 적응할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어딘가에 기대려는 마음을 짧은 시간에 압축하여 서둘러 처박아 넣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영광의 상처도 생겼다. 다음 날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필름이 끊겼다는 말을 고백해야 했고, 술이 나를 먹게 만든 이유에 대해 조금은 친절한, 조금은 지루한 설명도 나열해야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지도 않은 덩치에 동기 남자아이에게 업혀 집에 들어갔던 날이 기억난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 흠씬 두들겨맞으면서 속으로 '다시는 술이 나를 먹도록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다짐했지만, 며칠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오늘은 어디에서 술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마시던 술, 마흔을 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일단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맥주를 조금 마셨다 싶은 날에는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해독 시간이 부족한지 오후쯤 되어야, 본래의 컨디션을 회복하는 느낌이다. 스트레스 상황을 피하고 마음속에 윤활유를 넣어준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적 한계에 부딪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술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도 한몫했다. 거기에 무엇보다 '술'을 대신할 동무가 생겼다는,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바로, 글쓰기.


글을 쓰는 동안, 술이 나를 채울 때와 같이 글이 나를 채우는 일을 가만히 바라본다. 무엇을 넣든, 얼마를 넣든, 어떤 양념을 활용하든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갖다 부어도 글쓰기는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게 되돌려주는 것이 없었다. 누군가는 글쓰기가 무슨 큰 도움이 되겠냐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전체적으로 호흡이 차분해지면서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수시로, 현기증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잡는다. pc를 잡기도 하고, 핸드폰의 메모장을 열기도 하고, 노트를 펼친다. 그리고는 어떤 검열도 하지 않고 문자화 과정을 지켜본다. 용서를 바라지도, 응원을 바라지도 않는 날 것의 단어들이 쏟아지는 모습이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방해하지 않고 내 안에서 보내는 신호에 최대한 호의를 베푼다. 아주 오래전에 '술'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언제나 충분한 성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글쓰기를 통해 한번 필터링을 하고 나면 어떤 지문 같은 것을 발견한 느낌이 든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럴 땐 이렇게 해봐','언제나 옳다'와 와 같은 메시지를 지닌 오래전에 각인된 지문 말이다. 이 글을 처음 쓸 때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겼고, 의도적으로 실행에 옮겨보았다. 글쓰기로 말이다. 성과는? 당연히 긍정적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애초에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지만, 정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었는지, 내게 의미를 주는 스트레스였는지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생(生)에 나를 살릴 방법을 찾은 것 같으니 말이다.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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