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감사이벤트, '혼자'가 아닌 '함께'를 선택하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쉐도잉영어 아세요?"


쉐도잉영어가 100일이 다 되어간다. 영어에 대한 고민을 얘기했을 때 KY님이 추천해 준 쉐도잉 영어. 방법도 쉽고 누구나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포기되지 않는 영어를 향한 우회 도로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볼까?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그러면서 혹시 다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잠시 생각했었다. 나처럼 계획에서만 끝난 일이 많지 않을까? 성공하지 못할까 봐 시작도 하지 못한 일이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만들었고 좋은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 <자꾸 감사 이벤트>를 탄생시켰다.


자꾸 감사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은 새로운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 배우고 싶은 것에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강제성을 선택했다. 자신이 정한 미션을 수행하여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이었는데, 목록은 다양했다. 하루에 한 번 글쓰기, 영어공부하기, 아이와 영어원서 읽기, 10분 독서하기 등. 나는 용감하게 하루 10분 영어, 쉐도잉영어를 선택했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는 구박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가족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두 눈 딱 감고 날짜를 채운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어제가 98일째였다. 토, 일요일은 공식적인 휴무였기에 100일보다는 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할 나의 영어실력은? 정말 100일 만에 곰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무래도 신화는 신화인 것 같다. 이틀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아직 영어는 "내겐 너무 먼 당신"이다. 다만 영어에 대해 아주 약간의 '감'을 익혔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이런 것들.

'이런 문장은 이렇게 발음하는구나'

'이 단어는 저렇게 발음하는구나'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쉐도잉 영어를 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조금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왜 이걸 해야 하지?"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쉐도잉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약간의 틈이 생겨 책상에 앉아서 유튜브를 찾는 모습, 길을 걸으면서 계속 입으로 중얼거리는 모습, 잠시 쉰다고 침대에 누워서도 이어폰을 켜고 쉐도잉영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스스로 신기하면서 기특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적당했던 것 같다. 10분이니까 덤벼들 수 있었다. '달랑 10분인데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시작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곧 100일이다.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눈에 띄는 성과 없이도 여전히 덤벼들고 있다는 것은 자꾸 감사 이벤트의 압력이 만들어낸 결과겠지만, 분명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근래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폭염과 함께 6월이 시작되면서 자꾸만 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내려오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의지가 꺾여 속상한 날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잔소리가 쌓여가는 것도 불편했다. 개학을 했다고는 하지만 퐁당퐁당 학교를 가다 보니 어떤 날은 큰 아이가 학교 가고, 어떤 날은 둘째가 학교를 가니, 신경이 쓰이는 일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색한 영어, 어려운 영어, 쉐도잉영어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를 격려해보는 밤이다. 할 수 없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힘든 이유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할 수 있는 이유도 찾을 수 있었다. 감사할 이유도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서 '할 수 있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쓴 '어제의 나'에게 고마움을 전해본다.


무엇보다 함께 걷는 동지들이 있었기에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꾸 감사 이벤트를 시도하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고, 어떤 부분에서 성과를 낼 거라고 장담한 것도 없었다. 전체를 파악하고 시작할 능력 따위는 내게 없었다. 그저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인디언의 조언을 떠올렸을 뿐이다. 불안과 걱정이 많은 이 시대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말을 기억했을 뿐이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함께'를 선택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그러했듯, 그들의 일상에 아주 약간의 차이, 미묘한 징후를 만들어내는 일에 나와의 시간이 쓰임이 되었기를 희망해볼 뿐이다.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문화적 혜택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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