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자 재생에너지이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에게 건네는 말

by 윤슬작가

글쓰기 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느꼈던 몰입, 안정감, 따뜻함을 나누기 위해 원칙적인 이론의 전달보다는 글을 쓸 때의 감정에 더 충실하기를 희망하며 진행하고 있다. 나는 희망한다. 글을 쓰는 동안 마음속의 빗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드러누워있던 것들이 조금씩 몸을 일으키는 광경과 마주하기를. 무엇보다 나와의 수업이 끝난 후, 일상에서 부딪침이 생겼을 때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며 차분하게 글을 써 내려가기를. 단문 쓰기, 접속사 빼기, 어휘의 재발견보다 나와의 글쓰기로 친숙해진 활자를 통해 한 줄씩, 인생을 써 내려가듯 자신만의 문장을 써 내려가기를. 그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고, 또 비슷한 마음으로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글쓰기 수업을 한 이후에 이런 부분이 달라졌어요"

"글쓰기를 왜 삶 쓰기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수업을 마치고 작성한 후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표현들이다. 나는 글쓰기가 삶에 쓰임이 있기를 원한다. 정확한 데이터나 자료는 부족하지만 글쓰기를 하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은 참여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글쓰기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 원칙이나 기술을 배웠어요"라는 말보다 "앞으로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생활 속에서 글쓰기를 실천하고 싶어요"라는 글에 더 마음이 간다.


글쓰기, 가능하면 하루 한 번 글쓰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감정싸움으로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간 날에도, 신청한 사업이 잘되지 않아 마음이 우울해진 날에도, 예상하지도 못한 선물에 감사한 날에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에 집중하면서 글을 써 내려간다. 나에게 글쓰기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자 감정의 회복을 도와주는 재생에너지이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 나를 다독이는 과정을 나는 글쓰기를 통해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챙겨준 아침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늦었다고 쿵쾅거리면서 나간 아이가 몇 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빠뜨린 게 있다며 부탁 전화가 왔다. 거기에 신청했던 사업에서 탈락이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은 날이다. 무한 긍정의 기운이 샘솟아나지 않는 아침이다. 그래서 펼쳤다. 무엇을 쓰겠다,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떠오르는 단어의 조합으로 하얀 종이를 채워나가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런 날 오히려 더 쓰는 것 같다. 좋은 일, 가슴 벅찼던 날은 감사 일기에 마음을 옮기는 것으로 끝냈다면, 오히려 이런 날 정리되지 않은 문장, 말 줄임표, 긴 탁식이 뒤섞여 항해하듯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끙끙대다가 별 수 없으니 글이라도 쓰면서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지...'


이미 지나간 일을 들춰내는 일은 무의미해 보인다. 오지도 않은 내일을 예측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어딘가 어색하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떠올려본다. 이럴 때는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이 극적인 성공을 가져오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는 나는 오늘도 똑같은 문제 앞에 섰다. 잘 되지 않은 날에도 뭔가를 해야 하고, 잘 되는 날에도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 오늘도 물음표로 하루를 열어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어떻게 할지 지금부터 해봐야겠는데..."

"잘되지 않아서 속상하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원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봤는데, 별로 소용이 없었어..."

"그래? 어떻게 할 건데?"

"그러니까 지금부터 그걸 생각해봐야겠어...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by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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