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by 윤슬작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영화에 나온 대사인지, 드라마에서 들은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리듬을 타고 노래 가사처럼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연인에게 보내는 서툰 고백 같기도 하고, 끝내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터뜨려버린 일기장의 첫 줄 같기도 하고, 무엇을 위해서라고 말하기는 뭣한, 그러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담긴 표현 같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써왔다. 일기든, 단상이든, 주제가 있는 글쓰기든, 끄적거리는 일을 시작한 후 내가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라는 것이었다. 내 안에는 '이미 알고 있는 나'가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나'가 훨씬 많았다. '이러해야만 하는 나'가 있었고, '이렇게 되고 싶어 하는 나'도 있었다.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은 나'도 있었고, '이렇게 해도 되는지 궁금해하는 나'도 있었다. '연민에 기대는 나'가 있었고, '단호함에 이끌리는 나'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나 같은데...'라고 할만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헷갈렸다. 동시에 어떤 것도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 거야?'

'어떤 모습이 진짜 나라는 거지?'

'이게 나인가?'

'저 모습이 나인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어떤 날에는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뭔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한 것 같다.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물러나는 것이 안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게 약'라는 말이 제법 그럴듯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마치 해님달님 오누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생명줄인 양 붙잡은 것처럼 '나와의 만남'을 피하지 않기도 한 것이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고, 먼저 말을 건네고, 감춰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일을 몇 년째, 거짓말 조금 보태서 몇십 년째 이어오고 있고,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불쑥 찾아오는 습관은 여전한 것 같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나'라는 친구는. 하지만 당황스럽다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힘들게 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생각도 던져놓은지 오래되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도 내려놓았다. 그저 내가 지니고 있는 여러 모습 중의 한 가지이며, 언제나처럼 가장 적당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 노래 가사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너를 본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매거진의 이전글"언제까지 글 속에 갇혀있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