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은 마음을 따르는 수행자인지도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들

by 윤슬작가

매주 집 근처에서 열리는 화요장이 있다. 처음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주변에 상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거기에 남편이 차를 가지고 다닐 때여서 뚜벅이 생활은 불가피했다. 아이들과 병원 갈 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했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것 또한 당연했다. 그러다가 인근 아파트에서 화요장이 열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구은행과 몇 개의 건물을 배경으로 둘러싼 곳으로 아침 일찍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화요장의 모습은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새벽 찬바람을 맞으러 대문을 나섰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엄마는 집안일을 많이 시키는 편은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 엄마 손에서 끝냈다. 그렇지만 일주일 혹은 한 달 치 먹을거리를 사러 역전시장이라는 곳을 향할 때는 우리를 동행시켰다. 바퀴 달린 장바구니가 하나를 밀고 오면서 머리에 짐을 지고 다니던 엄마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역전시장을 따라다녔다. 지금은 이전되고 없지만 울산역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아주 넓은 부지를 차지하면서 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도무지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분은 팔촌이라고 하고, 또 어떤 분은 역전시장에 와서 알게 되었다고 하고, 또 다른 분은 고향분이라고 하셨다. 역전시장을 투어하듯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몇 번을 따라다녔더니 어느 날부터는 엄마의 코스가 짐작이 되었다. 대단한 먹거리를 사는 것이 아니기에, 필수 야채를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구입하는 경우였기에 눈치 없는 나도 대충 감이 왔다.


'아, 다음에는 과일가게로 가겠구나'

'생선을 산다면 저 집에서 먼저 사고 가겠네'

흔한 말하는 통밥이 생긴 것이다.


화요장을 찾은 나의 행동도 비슷했다. 별로 따지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인심이라는 것을 느끼기를 원했기에 말을 예쁘게 해주는 사람, 마음이 느껴지는 가게를 찾으려고 애썼다. 몇 번의 노력 끝에 단골 과일가게, 생선가게, 채소가게를 만들었다. 한 번은 채소 가게 아저씨에게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회 쿠폰을 선물 받았다. 특별히 주는 거라면서 손을 쥐어주시던 풍채 좋은 아저씨. 체구가 작은 아주머니의 말이 더 기억에 남았었다.


"괜찮은데... 고맙습니다"

"우리가 고맙지. 이날 맛있는 거 많아요. 한번 와서 먹어봐요. 우리는 따로 줄 게 없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습니다'라는 하늘을 선물해 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주 다니던 화요장이었지만, 일상이 조금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몇 년을 다니던 화요장이었지만, 동선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화요장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1월에 들어오면서부터 다시 화요장을 찾게 되었다. 오후에 이동하는 동선이 화요장을 통과해도 무리가 되지 않았다. 잠시 차를 주차하고 과일가게에 갔다. 귤을 사기 위해. 과일가게 아저씨는 단골이 넘치는 분이다. 가격을 높지 않게 판매하는 데다가 덤이 많은 분이다. 거기에 빨리 팔고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정오가 가면 아저씨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머리에 두건을 쓴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계셨다. 며칠 전 화요장을 찾았고, 다행히 아저씨는 그대로 계셨다.


"안녕하셨어요?"

"새댁 왔나?"

"네. 저희 귤 만 원어치만 주세요"

"만 원? 음, 그러지 말고 이거 한 박스 가져가"

"예?"

"이거 내가 만 오백 원에 받아왔거든. 그냥 가져가"

"아저씨... 매번 이렇게 주시고 남는 거 하나도 없겠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새댁이잖아. 손님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잖아"


화요장에서 듣는, 과일가게 아저씨에게 듣는 새댁이라는 소리가 낯설지만 좋았다. 이제는 새댁이 아니라 구댁(^^:)인데 아저씨에게는 늘 새댁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손님 중에서 제일 좋아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아저씨의 말이 이어졌다.


"맛이 있는지, 몇 개 더 주면 안 되는지, 묻지 않잖아. 믿어주잖아. 그래서 좋지"


본래의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알아서 주셨다. 당연히 맛이 있으니까 찾았고, 그런 내게 아저씨는 언제나 몇 개를 더 얹어주셨다. 따로 물어볼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지금까지 늘 그랬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잘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고 최고라는 생각에 '고맙습니다'를 반복하면서 자리를 떴다. 차로 걸어오는데 귤 한 박스를 산 것이 아니라, 귤 한 박스를 얻은 느낌이었다. 마음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회복을 돕는 마음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마음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를 가면 내 마음을 위로받고, 따뜻해지는지를. 그저 발걸음은 마음을 따르는 수행자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

작가의 이전글[수학이라는 언어] 다시, 수학이 필요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