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오랫동안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말을 남겼다.
오랫동안. 누군가에게는 몇 달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몇 년,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평생일 수 있다.
부모님은 내게 선생님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성적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유명한 철학관에서 이름을 지을 때 들었다며 학창 시절 내게 반복적으로 들려주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주팔자에 근거한 얘기였을 뿐, 나는 교대나 사범대를 진학하지 못했다. 조금 일찍 먼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나의 꿈이 사라진 게 아니라 부모님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십대에는 꿈 찾기를 하지 않았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탓에 이유 없는 방황이 더해지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전문대 진학, 휴학, 복학, CAD 자격증 도전, 번역사 도전, 설계사무소 근무, 호프집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다시 복학. 졸업. 편입. 다시 졸업. 전산팀 근무, 그리고 관리 업무까지. 이십 대. 나에게서 꿈이라는 단어가 사라진지 한참이었고, 오랫동안 꿈을 꾼 적도 없지만 꿈은 '내겐 너무 먼 당신'에 불과했다. 전체적으로 우울했고, 전반적으로 의기소침한 날들로 기억한다. 내가 꿈에서 멀어진 만큼 부모님과의 거리도 꼭 그만큼 멀어졌다. 그게 벌써 이십오 년 전의 일이다.
몇 년 전, 그러니까 2014년쯤 오래전의 일기장을 펼치게 되었다. 1997년, 98년... 그때의 일기를 뒤적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글쟁이. 글쟁이라는 단어를 발견한 것이다.
'정말? 이때 이런 생각을 했던 거야?'
'진짜?'
글쟁이가 이러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에서부터 글쟁이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개똥철학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글쟁이를 향한 고백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 모습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살아오는 동안 놓쳐버린 어느 기억 저편에 작가, 글쟁이를 향한 그리움이 가느다란 호흡으로 곁을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2004년 처음 네이버를 시작할 때 닉네임이 왜 글쟁이였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오랫동안 꾼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생각했던 방향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글쟁이에서 시작한 일이 어쩌다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조를 맞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내 모습을 두고 "그때, 그랬잖아? 유명한 철학관 선생님이 그랬었다니까? 그분이 정말 용하시다니까"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에게 웃으며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게. 진짜 그분 용하시네! 혹시 뭐 다른 얘기는 없었어?"
"다른 거? 그거 말고는 기억이 안 나는데?..."
유명한 철학관 선생님을 믿었든, 그 선생님의 해석을 믿었든, 부모님은 오랫동안 꿈을 꾸셨고, 그 꿈을 믿으며 지내셨던 모양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꿈은 찾는 게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던가. 찾아낸 것인지, 드러난 것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조금 더 발굴해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근처에 있으면서 호칭과 무관하게, 상황과 연결 짓지 않으면서 호흡을 들여다볼 생각이다. 큰 목소리 내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는 것은 없는지. 노트 구석에 속마음을 살짝 내비친 메모는 없는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