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by 윤슬작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00전화 번호부에 다니고 있습니다"

"00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00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 중입니다"

"실업급여 받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었다. 학창 시절, 학생이라는 신분에서는 '일'이라는 것으로부터 제외가 되었지만 사회인이라는 타이틀을 걸치는 순간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이름도 색깔도 모습을 달리했다.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말을 하나씩 옮겨보니,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풍경이 하나, 둘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비슷한 질문에 조금 다른 방식의 대답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약간의 하모니가 뒤섞인 느낌이라나 할까.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있고, 틈틈이 책을 읽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계속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글을 쓰다 보니 몇 권 책을 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사람들이 책 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직장이나 직업이라는 틀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루 일과 중에서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일, 그 자체를 설명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나는 하루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잘 해내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을 '일'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러니까 전업주부에게는 아이를 돌보거나 살림을 하는 것이 일이 될 것이고, 워킹맘이라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직장에서의 업무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본다면 학생은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고 있으니 공부를 일이 될 것 같다. 다시 말해 '일'은 업무를 설명하는 말이지, 단체나 조직의 이름을 대신하는 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오늘도 '일'을 한다. 엄마의 일과 출판사 업무, 작가 활동에 대해 적절하게 시간을 분배하고, 그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의 일이 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했었지만, 요즘은 상황이 역전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의 상황과 내가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관여하는 일이 나를 설명한다는 생각으로 소홀하게 대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가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점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자'이다. 그것이 내 일에 대한 예의이자, 내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을 알기에.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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