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진로와 관련해서 학교에서 상담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부모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얘기에 일을 마치고 학교를 찾았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아이의 현재 상황과 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어떤 부분에 더욱 신경을 쓰면 좋을지, 부족한 점과 잘하는 점을 고르게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크게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손을 펴보라고 했다.
"음... 너는 이과가 맞네!"
"네?"
"손금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질을 조금 나타내는데... 너는 이과 공부가 적성에 맞을 거야!"
"아!"
"너도 그렇고, 어머님도 그렇고..."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문과인데요?"
"어? 어머님도 이과 같은데?"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아 얼른 정리를 해주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문과 쪽 일이라서 그렇게 얘기하는 걸 거예요"
호기심이 많은 탓에 나는 사주팔자, 관상, 손금을 책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많은 부분이 희미해졌지만,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께서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또 아이는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상담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손금으로 진로에 관한 얘기를 한다는 것이 신기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엄마 손금이 좀 다르게 생겼잖아?"
"그래서?"
"나도 엄마처럼 되라고 열심히 그림을 그었었지!"
"그랬어?"
나는 일명 막쥔 손금이다. 흔히 말하는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고 하는 원숭이 손금이다. 손금이 조금 다르게 생긴 것이 기억에 남았는지, 아이는 손톱을 이용하거나, 자를 이용해 나와 똑같은 손금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고 고백했다. 다르다는 것, 그 자체가 아이에게는 '신선함'이었던 모양이다. '다르다는 것'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문제는 이런 '다름'에 의지하게 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다름에 기대어 뭔가 갑자기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어떤 날에는 다름에 기대어 자기 연민에 빠져들기도 한다. 다르다는 것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었다기보다 어디까지나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수준이었으니까. 간혹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름에 의지하기도 했다. 이런 습관은 생각보다 오래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틈만 생기면 막연하게 '다름'은 머물렀고, 어중간하게 태도로 지나치게 호의적인 모습을 변해버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그런 식으로 보냈다. 적당히 합리화도 시켰고, 도망칠 궁리도 마련해 놓은 채.
하지만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변화의 조짐이 생겨났고, 어느 날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을 한잔 마시고, 호흡을 가다듬고 그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뭔가 지금까지의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이제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함께 완전히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나는 나는 '다움'을 만났다. '바람직한 삶'에서 '바라는 삶'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던 시기와도 맞물렸던 것 같은데 거기서부터 내 삶의 많은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성 있는 고유한 삶, 나다운 삶은 무엇일까, 나의 어떤 일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엄마처럼 되려고 열심히 손금을 만들었다는 아이에게 전해주었던 말이 있다.
"너는 그런 거 안 해도, 엄마보다 훨씬 더 잘 살아갈 거야"
"엄마는 네 나이 때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너는 생각해 내잖아!"
"네가 엄마 나이가 되면, 더 멋진 손금이 되어있을걸?"
"너는 진취적으로 자기 삶에 대한 열정이 있으니까 충분히 잘 해낼 거야"!
그저 '다름'에 막연하게 매달렸던 나와 달리 아이는 '다름'도 알고 '다움'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걱정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금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것은 "손금은 변한다"이다. 네가 애써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어느 날, 자연스럽게 손금이 네 삶을 증명해 줄 거라고 말해주었다. 스스로를 돕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손금 역시 그 길을 따르기 마련이라는 말과 함께. 그 얘기가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모습이 마냥 예뻐 보였다.
"(피식) 그래? 음! 그럴 것 같아!"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