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서대주가 누구야?"

by 윤슬작가

"엄마, 서대주가 누구야?"


보험 관련 서류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빨간 노트. 벌써 7,8년이 흐른 오래된 노트였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이에게 쓰는 편지'같은 것이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에는 PC에 기록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노트로 옮긴 것 같다. 맨 처음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의 의도는 명확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아이의 책상 위에 노트를 올려주며 "네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단다"를 전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시작했다. 힘든 날을 넘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의도대로 될 줄 알았고, 아니 의도에 맞춰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 그런 나의 생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아이를 위한 선물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2012년 어느 여름, 편지라기보다 일기에 가까운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엄마, 서대주가 누구야?"

아이가 묻는 질문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아이에게 묻고 있었다.

"응? 뭐라고?"

"우리 집에 서대주가 누구야?"

"서. 대. 주?"

"응!"

"아빠 이름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아이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이가 하얀 봉투를 내밀며 얘기했다.

"현관 문에 붙어 있던데?"


000 세대주님 귀하


"아!"




'세대주'의 '세'가 자신의 성(姓)인 '서'로 보였던 모양이다. 2012년 나는 왼쪽과 오른쪽이 헷갈리는 아이, 한글을 아직 완벽하게 떼지 못한 아이, 그런 아이의 느린 행보의 답답해하면서도 '뭣이 중헌디"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어중간한 학부모였다. 그런 내가 우연히 비친 햇살 한 줌을 받아들고 입가에 미소를 올렸던 모양이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휘갈기듯 남겨둔 기록이었다. 이제는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도 모르는 것은 아닌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불쑥 불쑥 솟아나는 불안감에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저지대로 향하기보다는 햇살을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런 날 중의 하루였던 것 같다. '울컥'하는 감정 때문에 가슴 어느 한 구석이 뜨겁게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교육적인 차원에서 훈육을 하고 늦은 밤 편지를 쓰며 '미안해, 미안해'라는 사과를 연신 내뱉고 있었다. '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고생을 하는지...'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던 시절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습관적인 감탄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말을 하면 한 명이라도 알아주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나온 순진한 고백이라고나 할까. 빨간 노트에는 그런 고백들로 가득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몇 페이지를 읽어내려갔고,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던 기억이 소환되어 시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몇 개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네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단다가 아니었구나!"

"이렇게도 서툰 엄마였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런 엄마를 온몸으로 사랑해 준 아이가 있었구나!"

"아주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왔구나!"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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