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9월에서 10월은 전체적으로 설치는 느낌이 있다. 추석 명절이 이유가 될 수 있고, 친정엄마와 어머님 생신이 5일 차이를 두고 함께 있다. 거기에 타작(추수)이라는 행사까지. 예전에는 타작을 할 때 함께 내려가서 점심이나 참을 준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대열에서 빠졌다.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함께 할 수 없게 되었고 남편이 혼자 내려가 일을 마무리하고 올라온다. 지난 주말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일요일 아침, 토요일부터 타작을 위해 시댁에 내려간 남편과 달리 일을 마치고 조용한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그때의 평온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더러 들었는데, 의도하지 않게 상황이 연출된 것도 있지만, 나라는 사람이 일을 만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뭐라고 해보자’라는 마음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살아가던 사람이라 누굴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일요일 아침의 평온이 너무 좋았다. 온전히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엄마, 주부의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빨래더미에 쌓여 있는 옷가지들,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날씨에 이불을 바꾸면서 세탁이 앞에 펼쳐놓은 여름 이불, 토요일 저녁 쉬고 싶다는 마음에 미뤄둔 설거지, 비집고 틀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재활용품까지. 모든 것이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온한 마음도 잠시, 얼른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소파에 빈둥거리고 싶기도 했다. 생각이 그 즈음에 다다르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설거지를 끝냈고, 빠르게 방 청소를 했다. 옷을 분류하여 세탁한 후, 건조기를 돌렸다. 건조기로 해결할 수 없는 옷은 빨래건조대로 향했다.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홍길동이 되어 날아다녔다. 보통 이럴 때는 생각이라는, 자아라는 개념은 없다. 기계적인 느낌, 자동인형이 머릿속에 숙지된 것을 해결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그때였다.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침대에 누워 발로 문을 닫으려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빨래를 널어야 하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한다고 문을 열어놓으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지, 춥다면서 자꾸 문을 닫으려고 했다. 딱히 감정적이진 않았지만, 평소의 말투보다 한 옥타브쯤 올라갔던 모양이다.
“엄마가 문 열어놓으라고 했잖아?”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던 아들의 의아한 모습, 솔직히 표현하면 그 모습에 놀란 것은 나였다.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걸까, 어떤 식으로든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던 걸까, 전혀 관대하지 않은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문을 열어놓으라는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썩 훌륭한 방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아, 좀 부드럽게 말할걸...’
5분쯤 흘렀을까, 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말을 건넸다.
“엄마는 집안일 중에서 어떤 일이 가장 힘들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뭔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쯤 정적이 흘렀을까.
“딱히 어떤 것이 힘들다기보다는 부담감 같은 게 큰 것 같아. 세탁도 세탁기의 도움을 받으면 되고, 청소도 청소기의 도움을 받으면, 아주 힘들다고 말하기는 이상할 같아. 다만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 엄마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얼른 끝내고 원하는 것 하고 싶다는 마음? 음, 그것도 있겠다. 다음을 생각하면서 엄마가 계속적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 이런 마음이 부담인 것 같아”
가만히 얘기를 듣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렇구나... 엄마... 힘들겠다”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인생의 여러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열몇 살의 아이에게 위로받고 싶어 했다는 감정을 발견하니 복합적인 감정이 솟아올라왔다. 무엇보다 마음을 알아준 것이 고맙고, 미안했다. 제 방으로 걸어가는 아들을 불렀다.
“아들, 고맙다... 엄마가 담엔 더 예쁘게 말할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