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일부러 찾는 책이 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로 2016년부터 꾸준하게 읽어오고 있다. 처음 <트렌드 코리아>를 구입하게 된 것은 지극히 충동적이었다. 특별히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단순히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일 것 같다. 본래 촌스러운 구석이 많은 사람인 것도 이유겠지만, 트렌드나 유행은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관심조차 생겨나지 않았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을 양념처럼, 습관처럼 여기저기 흩어놓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해, 그러니까 2016년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마 친구와 함께 작은 공간을 오픈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고, 내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것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궁금해하던 중이었다. 트렌드나 유행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감정을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라는 질문이 수시로 나를 찾아와 곁을 내어달라고 아우성이었으니까.
단어도, 용어도, 관점도 평소 내가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라 처음에는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공부하듯 단어를 암기하고, 똑같은 단어가 나오면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다시 확인하면서 읽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시간도 흘렀고, 눈에 익은 것도 생겨났는지 한결 편안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의 부담감도 제법 줄어든 느낌이었다. 처음 몇 해 동안에는 읽고 나서도 부담감이 컸다.
'이런 흐름을 과연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제안하는 것들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아니, 하나라도 제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알고서도 못하면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반복적으로 결심이나 다짐을 스스로에게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유의미한 정도를 알아냈다는 것과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찾아왔고, "나는 잘 할 수 있어!"가 아니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도 감당해야 했다. 그랬던 사람이 요즘은 많이 달려졌다. 부담감이 완전히 사라졌다거나 다짐, 결심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막연하게 두려워하며 나와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러니까 '의무감'으로 읽기보다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트렌드 코리아 2022>는 2022년 10대 키워드로 나노 사회, 머니 러시, 득템력, 러스틱 라이프, 헬시플레저,엑스틴 이즈 백, 바른생활 루틴이, 실재감 테크, 라이크 커머스, 내러티브 자본을 선정했다. 2021년의 연장선에서 흐름을 이어가는 것도 있고, 새롭게 부각되는 키워드도 있었다. 물론 여기에 선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유심하게 봐야 할 키워드도 많을 것이다. 선정된 것이 전부이고, 선정되지 않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보다 어떤 부분에 더 관심을 높이고, 어떤 현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투쟁하거나 논쟁하기보다 먼저 다가갈 수 있는 배짱을 키우는 역할로는 충분할 것 같다.
"삶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다. life, uh..., finds a way" - p.51
트렌드 코리아팀은 꾸준하게 "일상력의 회복"을 강조해오고 있다. 본래의 가치, 진정성에 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력"을 강조했는데, 올해에는 자본이라는 표현이 가미해지면서 "내러티브 자본"으로 마무리를 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모두 인생 학교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런 까닭에 인생을 언급하지만 '일상'을 얘기하고, 삶을 인지해야 하지만 '순간'을 다루어야 한다. 인생은 매 순간의 합으로 가장 마지막까지 가 봐야 알 수 있다. 잘 살아왔는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지 단 하나의 선택이나 행동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삶은 그 자체가 프로젝트이다. 이왕 수행할 프로젝트라면 PPT도 예쁘게 만들어보고 싶고, '힙'한 이미지를 넣어보면 어떨까? 예쁜 PPT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삶이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내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으로 삶이 계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나를 찾아온 모든 것들을 환대하며 살아볼 생각이다. 플레잉 코치, 페이스메이커,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좋다. 내 인생의 가장 좋은 플레잉코치, 페이스 페이커로 남고 싶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