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글을 쓰거나 수업을 하는 날, 외부 출강 가는 날, 출판사 업무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날, 긴급한 일에 투입할 수 있는 날로 구분하여 생활하고 있다. 자유로움에 대한 책임감으로, 집중력으로 발휘하는 동시에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결정한 나만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훌륭한 구실'을 만나는 날이 종종 생겨난다. 진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라는 독백에 휩쓸려 우왕좌왕할 때도 더러 있다. 그런 날에는 이제는 성격의 일부가 되었다고 믿고 있던 나름의 질서, 체계가 흔들리면서 뿌리를 놓친 나뭇잎처럼 시간을 겉도는 느낌이 든다. 예상하지 않은 휴가를 받았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떨어진 폭탄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얘기하지만, 혼란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원하지 않았던 아픔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인 것처럼, 예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찾아오는 선물 같은 날도 있다는 것이다. 물질적이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 칭찬, 격려, 감사의 고백을 더러 받았는데 감사하다기보다 '과하게 포장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찾아들면서 마음이 한없이 겸손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모든 것이 소진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가도 갑자기 생명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상황이 다르게 보이고 순식간에 마음이 바뀌었다. 투정과 어리광을 부리고 싶던 생각은 자취를 감추고, 흔들리던 마음이 의지를 불태우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과 함께 절묘한 타이밍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작가님 덕분에 용기 얻습니다"
"이 수업이 저한테는 힐링입니다"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 보면서 저도 최선을 다합니다"
"작가님처럼 천천히, 멈추지 않고 가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아니라 한 명에게라도 의미 있는 도움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조금 솔직하게 고백하면 계산하는 삶,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해주면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해주겠지라는 이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은 단편적인 조각으로 내 생(生)을 흔들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이다. 나는 누구보다 내 생(生)을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사람이다. 옳다고 여기는 것, 그렇게 믿는 것을 향해 에너지를 쏟아붓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어설프게 낭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원하는 것, 지속하고 싶은 것, 엄두도 못 내었지만 해보고 싶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나의 삶을 채우고 싶다. 운이 좋았던 걸까. 덤으로 얻은 것도 상당하다. 예를 들면 " 하지 않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나를 키운다"와 같은 것들인데,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한번 해보는 경험은 일상을 넘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껏 확장시켜주었다. 오늘도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근거, 태도, 방식에 대해 매 순간 새롭게 정립해 본다는 마음으로 인생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대나무가 속도를 늦추고 마디를 만드는 것처럼, 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마디를 만들고 경계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