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뒤에 얼마나 큰 조직이 움직이는지 알지?"

by 윤슬작가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가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여러 감정들로 인해 복잡해지는 순간, 노트북을 펴거나 노트를 펼쳐 떠오르는 것을 적어내려갈 때가 있다. 어떤 목적의식보다 마음속에서 떠들어대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붓고 나면 몇 가지가 정리가 되면서 삶이 조금 단순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 차분하게 노트북을 덮을 때도 있다.


얼마 전 첫째가 기말고사를 끝냈다. 평소 시험에 대해 부담감을 주지 않는 편이라고 해도, 아이패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며 기말고사에 대해 한껏 기대감을 올렸던 아이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번에도 뜻밖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험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객관식에서 점수가 오른 과목은 서술형에서 완전 폭망했다고 고백했고, 예전보다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제대로 이해한 것과 이해하지 못한 것들 사이의 세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모습이었다. 문제를 꼼꼼하게 읽지 않음으로 인한 결과에 자신에 대한 답답함은 폭발 직전이었다. 노력은 예전보다 조금 더 했는것이 분명해보였지만, 성과를 내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위로 차원에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점수에 대한 답답함을 남발하는 것에 대해, 학원이나 과외, 현재의 공부 방법을 대해 분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지금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첫째가 시험 얘기를 꺼냈을 때 남편과 나의 생각을 밝혔다. 시험을 쳤을 때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왜 틀렸는지, 제대로 암기하고 이해를 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아는 것 같은 느낌으로 친 것인지, 문제를 더 많이 풀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아니면 암기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게 더 좋은지, 시간이 흐르기 전에 더 파악해 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지금껏 시험을 친 후 반복적으로 나왔던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라늄 하나밖에 피어있지 않은 미니 베란다지만, 나름 대화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공간에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지만, 아이의 얼굴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만족감을 주기는 커녕 그리 기분 좋은 대화 주제가 아님은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시험이 인생의 방해물이 되기보다는 어떤 도약의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적절한 단어를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활용하던 중이었다. 잠깐씩 말이 중단되기도 하고, 반항 가득한 말이 중간에 툭툭 오가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네 뒤에 얼마나 큰 조직이 움직이는지 알지?"


남편이었다. 조용한 말투로, 첫째의 얼굴을 보며 남편이 꺼낸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첫째가 "피식" 하며 웃었다. 웃는 게 누구보다 예쁜 첫째인데, 시험 결과 얘기를 하는 동안 내내 침울함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남편이 아이에게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갑작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피식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하긴 남편의 말이 조금 과장되어서 그렇지 틀린 말이 아니다. 남편은 첫째가 시험기간 동안 일찍 등교를 하겠다고 해서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출근길에 나섰다.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기 때문에 아빠가 지원 사격에 나선 것이다. 차 안에서 먹을 음식을 챙기기 위해 나 역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떠야 했다. 과일 약간, 밥 될만한 것 약간을 도시락처럼 챙겨주었다. 둘째는 누나의 시험 기간을 지원하기 위해 감정을 건드리거나, 게임이나 넷플릭스로 방해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네 뒤에 얼마나 큰 조직이 움직이는지 알지?"

가족 모두 첫째의 시험 기간에 대한 배려를 언급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남편은 첫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따듯한 이야기만 나누면 가장 좋겠지만, 악역을 맞는 사람은 어디서든 등장하기 마련이다. 시험지가 보고 싶지 않아 던져놓았다는,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지 않다는 행동에 대한 언급과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는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희한하게 어느 순간부터 내 담당이 되었다. 시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고, 저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협업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더 큰 능력을 발휘하는 첫째이다. 그런 첫째에게 공부에서 재능을 발휘하기보다 공부에서도 배움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인데, 늘 절반쯤만 전달되는 것 같다. 하긴 절반이라도 전달되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from. 기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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