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을 맞이하다

by 윤슬작가

1월 4일은 결혼기념일이다. 첫 몇 해는 날짜를 꼼꼼하게 챙겨 분위기 있는 곳에서 외식을 하거나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남편이 먼저 선물을 챙겨주고 아는 척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훨씬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의 어떤 장면을 대신한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남편이 먼저'라는 단어에 물음표가 생겨났고, 이렇다 할 마침표를 완성하지 못하던 나는 순서의 개념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순서만 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두 아이가 태어나고 일상이 바빠지면서 결혼기념일은 물론 생일까지 잊어버리는 일이 자주 생겨났다. 이틀 전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당일 까맣게 잊고 지나간 후,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아차차!'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작년이라는 표현이 어색한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12월 중순쯤이었다. 페이스북이었는지 인스타였는지 모르겠지만 피드를 보고 있는데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가 있었다. 평일에는 덤으로 부부는 무료 메이크업을 진행해 준다는 행사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는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순간적으로 '곧 결혼기념일인데, 가족사진 한 장 남기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벤트 신청과 함께 번호를 남겼는데, 일주일 뒤 연락이 왔다. 가족사진 촬영 이벤트에 당첨되었으며, 리마인드 웨딩사진까지 찍어준다는 것이었다. 비용은 3만 원으로 28*30cm 가족 액자를 준다고 했다. 그날 저녁 남편과 두 아이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고 예약을 진행했다. 몇 년 전 아버지 칠순잔치 사진을 찍으면서 가족사진을 기념으로 찍었는데 두 아이 모두 어릴 때라 다시 한 장 찍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터라 잘 되었구나 싶었다. 캐주얼 사진에 리마인드 웨딩 사진까지, 사진을 찍는데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최종 사진까지 선택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다른 일이 있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조만간 다시 찾아가 사진을 선택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사진도 찍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헤어질 계획이었는데, 촬영이 늦어지면서 쫓기듯 돌아와야 했다. 점심은 초간단으로 김밥에 라면으로 때우고 남편과 나는 일터로, 두 아이는 학원으로 달려갔다. 저녁에 맛있는 것을 먹자는 말만 남긴 채. 그래도 어느 해보다 뜻깊은, 신선한 결혼기념일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우리 내일 아침은 케이크 먹자!"

"케이크?"

"응. 내일 아침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잖아"

"동생은 2천 원 지원했고, 나머지는 내가 용돈으로 쐈어"

"그래? 멋진데?좋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바란 적도 없고, 남편과 따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도 없다. 그저 우리가 선택한 시간을 받아들였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흘려보내면서 지내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17년, 18년을 향하고 있다. 동생의 2천 원을 지원받아 케이크를 사 왔다는 첫째의 마음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단순한 케이크가 아니었다. 케이크가 마치 결혼 생활이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의무로만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도 있었지만, 숨겨진 혜택이나 진실이 곳곳에 숨겨져있다는 생각에 새삼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며, 어떤 모습이 아름다운 결혼생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다투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기도 하면서 결혼생활의 비결과 상관없이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 나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무질서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법칙을 강요하기보다 상생할 수 있는 질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느 해보다 풍성한 마음으로 결혼기념일을 맞이한다. 혼자여서도 좋았겠지만, 둘이라서 더 좋은 이유를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