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라는 단어를 들었다.
"중간고사"라는 단어도 들었다.
"준비하지 않으시면"이라는 단어도 들었다.
종합하면 단 "큰일입니다. 어떻게 하실래요?"였다.
중학교 1학년인 둘째와 집에서 일 년 동안 영어 단어 외우기를 해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한순간에 꺾였다. 하루에 10분이라고 했지만 20분이 되는 날이 많았고, 100일이라고 했지만 300일을 넘겼다. 중학영어라도 해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매일 영어 단어를 마주하는 것을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는 끈기를 배우는 멋진 경험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다고, 배우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영어학원을 알아보았다. 몇 군데를 알아보던 둘째가 친한 친구가 다니는 영어 학원이 좋을 것 같다면 알아왔다.
학원에서는 비용을 받고 레벨테스트를 한다고 했고, 내일 시간 맞춰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물론 둘째의 상황과 어떤 태도로 임할 것인지에 대해 언급을 해두었던 터라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얘기는 다르게 흘렀다. 작년에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았고, 초등학교 때 1년 정도 다닌 것이 전부라고, 문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얘기했음에도 "알고 있는 문법에 대해, 본 것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마음이 하나씩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저희 학원에서는 들어갈 수 있는 반이 없습니다."
"저희는 중학교 1학년 친구들 중에서 잘하는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그보다 못하는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선택지는 하나입니다. 학년에 맞춰 공부를 가르쳐주는 학원을 찾으시고, 그 학원을 빨리 찾으세요. 빨리 찾아서 중간고사 준비하지 않으시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어섰지만 솔직히 마음은 좋지 않았다. 처음 전화로 상담할 때 모든 상황을 전달했었는데, 그때 정확하게 얘기해 줬더라면, 굳이 이곳에 불러 얼굴을 마주 대고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그다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왜 이렇게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였다. 학원에 갈 때까지만 해도 불안하지 않았는데, 학원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빨리, 빨리, 큰일은 별로 좋아하지 단어이다. 불필요하다고까지 생각하는 나로서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마지막은 아이의 마음이 신경 쓰였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줄곧 얘기했던 엄마의 얘기가 마치 틀린 것처럼 전달되는 것 같아 애가 쓰였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당자는 비슷한 말을 계속 반복했다.
"빨리 학년에 맞춰서 가르쳐주는 학원 찾으세요. 거기서 기본이든, 심화든 얼른 시작하세요..."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학년에 맞춰서 가르쳐주는 학원을 찾으라는 말이 낙오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주 가끔은 설명이 쉽지 않은 상황을 목격할 때가 있다. 그럴 날에는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진다. 이번처럼.
그때였다.
"엄마, 초록불이야. 가"
"너는 괜찮니? 엄마는 좀 속상하고 기분이 그렇던데"
"뭐, 그렇지. 다른 데 가서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그동안 내가 공부를 안 했잖아. 이제 빡세게 하지 뭐"
"그렇지? 그래. 우리 다른 데 알아보도록 하자!"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