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2차 접종을 맞고 미열이 있어 둘째가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옆에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잔소리가 많아서 힘들지 않은지 물어봤고,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함께해 주었다. 그러면서 엄마도 예전에 할머니하고 할아버지가 얘기할 때 듣기 싫을 때가 많았는데 살아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다고.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한 경험이 있어 운전하는 것에 대해 염려가 많고, 자전거 사고로 조카가 죽은 이후로는 더 걱정이 많아지셨다고 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이제 조금은 그 마음을 더 알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듣기 싫어도 좋은 말이려니 하고 넘겼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고맙게도 둘째는 내게 "엄마는 그렇게 잔소리 많은 사람 아니야"라는 예쁜 대답을 되돌려 주었다.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둘째를 꼬옥 껴안아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둘째가 얘기했다.
"엄마 그때 기억나? 저번에 살던 집 내방에 책장 있고 구석진 데 있잖아. 내가 거기서 울고 있었잖아. 어떤 애가 장난친다고 눈 속에 돌멩이 넣어서 던지는데 그거 맞기 싫어서 도망 다니다가 넘어져서 울고 왔잖아. 엄마가 그때 나 위로해 줬잖아"
"그럼 기억나지"
"그때 엄마가 걔들 혼냈다고 했잖아? 진짜 그랬어?"
"그랬지. 눈 속에 돌멩이 넣고 던지면 안 된다고 얘기해 줬지"
"각 잡고?"
"그럼, 잘못된 거라고 얘기했지. 엄마가 말했잖아. 엄마가 아들 도와준다고."
둘째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보다 부드러운 말투와 표현을 가진 아이다. 몸을 뭔가를 설명하기보다 말로 설명하는 것이 쉬운 아이다. 하지만 학교나 밖에는 그런 면이 약한 부분으로 보일 때도 있다. 소통과 친화력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순간 그것을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을 알기에 부족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것을 잘 아는 까닭에 늘 마지막에 한 마디를 붙여준다. 그날도 그랬다.
"아들, 엄마가 뒤에 있을 테니까 힘들 때는 언제든 달려와, 뭐, 좋을 때는 생각 안 나면 어쩔 수 없고. 대신 힘들 땐 달려와. 알았지"
실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언제나 엄마는 네 옆에 있다고.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고 자주 말해주고 있다. 특히 어려울 때는 주저하지 말고 엄마에게 얘기하라고 했다. 해결책을 마련해 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만큼은 확보해 주겠다고. 네 편으로 남아 네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그 마음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두 아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이다.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은 단 한 명, 단 한곳만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힘들 때는 말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상황이 늘 호의적일 수는 없다. 그럴 때 단 한 명이 있으면 그 순간을 넘어설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고 싶다. 어른이 되면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는 첫째, 서울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둘째의 야무진 꿈을 볼 때마다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넓은 세상에서 부딪칠 많은 일이 염려되어 걱정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너희가 원하는 만큼, 너희가 만나고 싶은 만큼 만나보라고. 부모님이 지나치게 안전을 강조하고, 사고를 언급하던 까닭에 넓은 세상을 부딪치는 일을 두려워했던 나와 달리 더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