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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더니

by 윤슬작가

예쁘다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예쁘다는 말은 나와 상관없는 단어였다. 최고의 찬사라면 그저 '귀여운' 정도? 솔직히 '귀엽다'라는 말은 중의적인 구석이 있다. 귀엽다는 의미에서 쓰이기도 하고, 마땅한 말이 없을 때 구색을 갖추기 위해 활용한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터. 그런 까닭에 귀엽다는 말에 입이 귀에 걸리도록 기뻐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위안을 안겨주는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귀엽다'라는 말에도 연령 제한이 있는지, 나이에 숫자가 하나씩 더 얹어지기 시작하면서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다. '귀엽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어봤는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놀라운 일이 생겼다. 적어도 내겐 놀라운 일이었다. '귀엽다'도 아니고 '예쁘다'라는 말을 들었으니.


"손님 눈썹 예쁘신 거 아시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말은 실로 진리이다. 나의 눈썹을 이렇게 세밀하게 봐주는 사람이 있을까. 눈썹의 방향과 색깔, 모양에 대해 이만큼의 관심을 쏟아부어 줄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그리운 것도 아닌데, 예쁘다는 말에 목말랐던 사람도 아닌데, 그 소리에 꽁꽁 얼었던 강에 봄이 왔는지, 재잘재잘 물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라이너가 부러진 채, 그러니까 팬심과 뒤쪽의 터치하는 부분이 분리된 채, 제법 오래 생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었는데, 며칠 전 얼마 남지 않은 팬심이 부러졌다.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화장품 가게를 찾게 되었다.


"아이라이너 하나 주세요"

"어떤 종류로 드릴까요?"

"네?... 연필 같은 것 주세요"

"돌리는 것도 있고, 깎는 것도 있고, 붓펜도 있고, 여러 종류가 있는데, 원하시는 게 있으세요?"

"어... 아... 그러면..."


그러면서 얘기가 길어졌다. 집에서 돌려쓰는 연필을 썼다는 말과 함께 혹시 추천할 만한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일단 나보다는 전문가라는 생각을 했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이번 기회에 바꿔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직원은 친절했다. 점포에 있는 아이라이너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제품을 가져왔고, 하나씩 시범을 보이며 장점을 설명해 주었다. 영업의 귀재일 수도 있겠지만, 나보다는 확실히 눈썹에 대해 지식이 많아 보였다. 그러면서 듣게 된 말이었다.


"손님, 눈썹 예쁘신 거 아시죠?"


점원은 친화력을 갖추었지만, 그렇다고 과대포장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의 눈썹에 대해서도 어떤 부분을 조금 자르면 좋은지, 그리고, 어떻게 라인을 살리면 좋은지 하나씩 짚어주었다. 성실해 보이는 그녀의 말에서 정직함이 느껴졌다.

"앞쪽에 눈썹이 많아서 예쁘신데, 여기 중간에 약간 빈 곳 보이시죠? 여기는 조금 짙게 색칠하시고, 끄트머리는 조금 다듬으시면 좋아요. 지금 상태로 하면 눈이 처져 보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눈썹을 그리시면서 전체적으로 색을 칠하신 것 같은데, 뒤쪽은 조금 연하게 하시면 좋아요"


반박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진심을 다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전해주려는 마음은 진심 가득이었다. 그녀가 가르쳐준 대로 아침에 일어나 눈썹을 그려보았다. 이렇게, 저렇게. 언뜻 보니 그녀가 그려준 거라 비슷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또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조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화장대 앞에서 눈썹을 그린다고 그렇게 오랜 시간 서 있어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p.s 글을 쓰면서 아주 살짝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혹시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의 눈썹만 쳐다보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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