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어느 행사장에서 작은 커피나무를 사 온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3년, 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조금씩 키가 자라는가 싶더니 몇 번 잎만 무성하게 올라왔다. 잎만 무성할 뿐 꽃이 맺히지는 않아 꽃을 보는 일은 포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게 작년까지 보냈고, 올해는 기운이 빠졌는지 봄이 왔는데도 잎을 무성하게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시들해진 모습에 어쩌면 죽은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나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가만히 지켜보거나 남편이 물을 주거나 가지치기를 할 때 보조 역할이 전부였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처음에 들여올 때부터 매일 아침 새로 올라온 싹은 없는지 살폈다. 봄을 맞이해 밖에서 꽃을 사 왔을 때도, 한껏 자란 아이를 분갈이하여 옮겨심을 때도, 흙의 모양을 살피며 물을 줄 때도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정하고 친절했다. 영양제를 사 오고, 지지대를 구해 받쳐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겨울을 지나오면서 커피나무가 이제는 어려울 것 같다며 섣부른 말을 던지던 내게 '여기 한번 살펴봐.'라며 작은 싹이 올라온 것을 알려준 사람도 남편이었다. 정말 남편이 말처럼 가지 끄트머리에 뭔가가 꿈틀거리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게 일주일 정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급기야 지난주 커피나무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 꽃을 피운 것이다. 주말에 울산에 다녀오면서 미처 살펴보지 못했는데, 월요일 아침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 보니 꽃망울을 터뜨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와, 너 대단하다!'
'... 미처 몰라봐서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예쁘게 꽃을 피울 수 있는데, 혼자 지레짐작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커피나무에 쏟아부은 남편의 정성이 생각났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특별한 성과가 없어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살피던 남편의 관심과 애정이 떠올랐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커피나무 여기저기에 피어오른 꽃을 보며 여러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라는 어느 글도 생각나고, 하루아침에 겨울이 올 수 있다고 얘기한 시인도 생각났다. 하루아침에 봄날을 가져온 커피나무, 겨우내 언 땅에서 봄날을 위해 얼마나 분주하게 지냈을까, 미처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연신 셔터만 눌러댔다. 몰라봐서 미안해. 진짜.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