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은행이 점포를 정리하고 철거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1층, 그것도 가장 좋은 위치에 은행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위치가 밀려나는가 싶더니, 요즘은 1층에 ATM기만 있고, 은행 점포는 2층으로 올라온 상황이 드물지 않다. 내가 있는 곳의 사정도 비슷했다. 바로 앞에 K 은행이 있었다. 점포 3개를 합해서 완성한 공간이었는데, 지난 1월 점포 폐쇄 안내문이 붙었다. 다른 지점과 합류할 예정이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한 달쯤 흐른 후, 폐점되었다. 그러고 한참 동안 조용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완전무장을 한, 건장한 체구의 아저씨였다. 금고를 본 적도 없지만, 크기에서, 분위기에서 금고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몇 명의 아저씨가 금고를 이동하고 지키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외근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한동안 조용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출입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테이블과 의자, 가구가 밖에 나와 있었다. 재활용센터에서 오신 것 같았다. 벽에서 떼내는 것도 있고, 부피가 큰 것은 옮길 수 있도록 분리하고 계셨다. 꼬박 이틀이 걸린 것 같다. 며칠이 지났을까. 에어컨을 비롯해서 전기제품을 가져가시는 분들이 오셨다. 전기용품까지 옮겨진 후 얼마 동안은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주부터 또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나오신 것 같았다. 마감재를 하나씩 뜯어내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복도가 환해지기 시작했다. 통로 쪽으로 나무로 마감을 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부분을 뜯어내면서 계속 갇혀 있는 빛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마감재가 쌓인 모습을 보면서, 물론 다른 것도 있겠지만 폐기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 생각도 잠시, 마감재를 뜯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아침,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는데 뭔가를 절단하는 소리와 용접 냄새가 바람을 타고 계속 날아들어왔다. 냄새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보니 본격적으로 철거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족히 2미터가 되어 보이는 전자 키판 같은 것을 앞에 두고 5,6명의 아저씨들이 모여 확인 작업과 철거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도 들려오고, 뭔가 제대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출입문이 부착되고, 바닥의 타일이 철거되고, 며칠 전에는 파란 줄에 딸려온 시멘트가 일정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철근을 박고, 1층과 연결되는 부분을 원상 복귀하려는 것 같았다. 다섯 개의 안전제일 가림막이 시멘트가 채워진 곳을 막아놓고 또다시 이틀이 지났다. 작업이 마무리 단계인지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아주머니 두 분이 모습을 보이셨다. 통로 쪽과 길가 쪽의 선팅 지를 제거하고 계셨다. 통로의 절반이 썬팅지였는데, 그것을 떼내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길가의 나무와 초록 잎이 보이기 시작했고, 햇살의 일렁거림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철거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것 같다.
뭔가를 새롭게 만드는, 만드는 과정을 유심하게 지켜본 일은 많지만, 철거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하기는 처음이다. 순식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 것이 이토록 빠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환한 불빛을 따라 많은 사람이 오가던 곳에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찾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위기에 놓이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여러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동안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역사 속에 사라진다'라는 말을 더러 접했던 것 같은데, 이번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는 처음이었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