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은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없으세요?"
"작가님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한 적은 없으세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더러 질문을 받는 편이다. 읽기를 좋아하고 쓰기를 즐기는 사람에 대한 어떤 환상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질문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금 둘러 얘기하거나 아니면 방향성을 언급하며 어떤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지 물어올 뿐이다. 그런데 아주 용기 있는 분을 만났다. 글을 쓰는 노력에 대해, 과정적 어려움에 대해,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마지막이 히트였다. 수시로 엄습하는 허무함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다정한 커피를 건네며 의견을 물어왔다. 그날 참 여러 번 '음...'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던 기억이 난다.
'음...'
'음...'
'정말 어려운 질문 주셨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침에 읽은 책의 어느 구절이 생각났고, 다이어리에 필사해놓은 문장도 생각났다. 얼마 전부터 예약판매를 시작된 <내가 좋아하는 동사들>도 생각났다. 인쇄 과정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 일정을 멈추고 매달렸던 날의 기억도 생각났다. 그날 저녁 녹초가 되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느닷없이 찾아와 창밖을 보며 멍 때리기 했던 순간도 기억났다. 가장 선해 보이는, 가장 친절해 보이는 답변이 금방 떠오르지 않아 한참 동안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허무하다는 느낌, 저도 받죠. 아니, 허무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수시로 찾아들어요. 특히 그럴 때 굉장히 심한 것 같아요. 나름의 목표를 설정하고 열정적으로 매달렸을 때, 그러니까 최선이라고 할만한 것이 모두 끝났을 때, 희한하게 그럴 때 '허무'라는 단어가 찾아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성과가 예상하고 달라서, 그러니까 기대와 달라서 그런가 했어요. 이 정도 했으면 이래야 하지 않아? 했던 거죠.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최선을 다하는 것을 몇 번 경험했는데,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끝마쳤을 때 항상 느꼈던 것 같아요. 성과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뭐랄까. 목표에 기댔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기댈 것이 사라진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여간 그러면서 '허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럴 때...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했다기보다는 그냥 지켜봤던 것 같아요. 시간도, 마음도. 떠오르는 문장, 생각, 단어도 지켜봤던 것 같아요. 허무라는 단어가 수면 위에 올라오는 순간 수동적 허무주의, 능동적 허무주의가 한꺼번에 생각나거든요. 그렇게 얼마쯤 보내고 나면 운명애, 그러니까 아모르파티가 기억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단단한 단어가 고개를 내밀었던 것 같아요. 권력에의 의지, 자기극복, 뭐 이런 것들... 그때가 되면 맨 처음의 '허무'라는 단어는 망각의 강을 건넜는지 좀처럼 고개를 내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경계를 넘어섰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껏 그랬던 것 같아요. 음... 그리고 그 즈음에 다다르면 아주 친숙한 이미지가 눈앞에 나타나요. 양팔을 벌리고 두건을 쓴, 어떤 남자가 춤을 추는 사진인데요. 아이의 얼굴에 광대처럼 춤을 추고 있어요. 양팔을 벌리고, 얼굴 전체에 미소가 가득해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거기가 거의 국경이에요. 최선을 다했던 어떤 것이 기억 창고로 들어가고, 호기심에 낯선 서랍에 시선이 가면서 열고, 닫고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혼잣말을 했던 것 같아요. 음... 이번에는 이걸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잠시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떠들었던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바라보았다. 알듯 말듯 한 표정이었다. 한참 하늘을 응시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작가님, 작가님은 잘 가고 계신 것 같아요.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럴까요?..."
나름의 목표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뭐가 목표인지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매 순간 출발한다는 마음만 확실할 뿐, 나머지 부분에서는 딱히 정해놓은 것은 없다. 그래서 정확한 목표 혹은 분명한 목적지를 설명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조바심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최선이라고 여겨질만한 선택을 하는 것으로 조금씩 밀도를 높이겠다는 다짐만 되뇌일 뿐이다. 이번처럼 어려운 질문을 만나면 쩔쩔매기도 하고,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나를 조금 어렵게 만드는, 어정쩡한 대답을 내놓게 하는 것들로 인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목격해야 할 풍경을 조금 일찍 만나게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뭔가 삶의 비밀에 한걸음 더 다가간 느낌을 가지게 한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