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책과 글쓰기

by 윤슬작가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시를 읽었다고 해야 할까, 시와 산책을 다녀왔다고 해야 할까.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잠시 바람을 쐬고 왔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조금 걷다가 멈추고, 또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했다. 요 근래 시집을 가까이하지 않고 살고 있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와 산책」

저자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꽃이 피어난다. 어떤 식으로든 나도 비슷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비슷한 마음이라고 아는 척을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길고양이, 소록도, 정신병원, 수녀원까지. 그녀의 삶에도 여러 계절이 있었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삶이 알아차리기 전에 그녀의 시선이 먼저 알아차렸던 모양이다. 피어오르는 모습을 관찰할 것이 있었고, 꺾이는 것을 지켜본 과정이 있었고,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막막함을 그려놓은 풍경도 있었다. 저자가 옮긴, 세사르 바예호의 시구처럼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저자가 소개한 시인도 좋았고, 그들의 시어도 좋았다. 그들에게 기댄 저자의 표현도 좋았다. 아껴두고 조금씩 읽었다. 산책을 나가지는 못했지만 벚꽃이 피고 지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떤 장면에서는 울컥하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 갑자기 전화기를 들어 올리기도 했다. 믿음에 견고함이 더해지는 기분을 갖기도 했고, 망각의 강을 건넌 어떤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고, 책을 덮고 한동안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던 것 같다. 「시와 산책」, 산책을 하면서 읽은 것도 아닌데, 산책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가지게 했던 책이었다. 여백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참 오랜만에 한 것 같다.


from. 기록 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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