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과 진화의 관계

by 윤슬작가

나는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친근감이 느껴지고 따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우리'라는 단어에 깊게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을 만났다. 바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이다. 나도 모르게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집단을 구분 짓는 기준으로 삼지 않았는지 반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생물학자들의 죄가 크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눈에 눈 눈, 이에는 이'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삭막한 곳으로 묘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죄를 찰스 다윈의 '적자생존'에 뒤집어 씌웠다"


<다정한 것은 없다>의 추천의 글 첫 문장이다. 적자생존, 얼마나 친숙한 단어인가. 또 얼마나 많이 노출되었던가. 아니라고 얘기하면서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가 아니라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적자생존을 진화의 성공 비결로 이해했다. 여기에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 사람이 있다. 브라이언 헤어는 하버드 대학교 재학 시절의 지도 교수였던 리처드 랭엄의 '자기 가축화 가설'을 우리 인간에게 적용해 봐야 좋을 거라고 제안한다.


연구에 따르면 가축화 과정에서 동물은 얼굴형이 변하거나 치아 크기가 달라지고 신체 부위별로 다른 피부색이 나타나는 것처럼 특별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여러 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면서 본래 야생에 있는 동물보다 훨씬 덜 공격적이며, 훨씬 더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개와 고양이다. 그처럼 가축화 과정을 거친 동물은 더욱 친화력을 발휘하고, 협력의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생존비결이자 번식력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라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인간을 바라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발적으로 가축화, 그러니까 친화력을 발휘하여 관계를 맺고, 협력을 유지했는데, 그것이 생존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언어'가 있었으니 친화력을 발휘하는 일, 관계를 맺는 일, 협력하는 일에서 인간은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높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친화력은 결국 협력을 위한 발판이자, 협력을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역량인 셈이었다. 그런데 친화력에 치명적인 약점이 숨어 있다. 구분 짓기. 친화력은 동일한 세계관 혹은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기 위해서도 쓰였지만, 다른 모습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는 일에도 쓰였다. 즉 어떤 기준이 따로 있다기보다 '나와 친한 사람인가? 친하지 않은 사람인가?'가 기준이 되었다.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에 빠진 부분도 이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우리'라는 단어를 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꾸 되묻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무자비한 종이다"


'들어가는 글'에 나오는 문장인데,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비인간화. 섬뜩하고 무서운 단어였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떠올랐다. 수잔 선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연민에는 무고함이 숨어있다'라는 문장,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 뉴스를 장식했던 인종차별에 관한 기사까지. 결코 다정하지 않아 보인 비인간적인 모습이 생각났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금까지 인류사는 그랬다. 하지만 덕분에 많이 죽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부족을 향한 편협한 다정함이,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될 수 없을까?". 의미 있는 질문이다. 나의 다정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편협한 다정함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다정함과 친화력이 나의 '우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친화력을 자기 가축화를 통해서 진화했다. p.31


우리 종이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의를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p36


유인원의 친척 가운데, 오직 보노보만이 우리를 괴롭혀온 치명적인 폭력성에서 벗어난 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탁월한 지능과 지성을 뽐내는 인간이 하지 못한 것을 보노보가 성취한 것이다. p.106


우리는 모두 한때 낯선 사람이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 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 하지만 이 친절함은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p.195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p.226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p.300


자기 가축화 가설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가축이 되었다. 사실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다. 애착과 접촉, 호기심과 놀이, 공감과 협력 등의 여러 정신적 형질은 그 차체로 인간성의 본질이라 할 만하다. p.310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와 산책, 책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