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판타지? SF?"
단순한 호기심으로 붙잡은 책이었다. 하지만 페이지가 늘어나면서 궁금증이 생겨났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책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갈 때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떤 정보도 없이 접근했으면서도 "이렇게 되겠지"라고 지레짐작하면서 읽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결국 보기 좋게 패배했다. 나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상당히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새롭게 밝혀진 고대의 보물을 박물관에서 처음 마주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 책은 판타지도 아니었고, SF도 아니었고, 에세이도 아니었다. 새로운 장르의 문학이었으며, 독창적인 다큐 드라마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룰루 밀러.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이며, 15년 넘게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 일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NPR(인비저빌리아>의 공동 기획자이고,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국 WNYC<라디오 랩>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으며, <뉴요커>,<VQR>,<오리온>,<일렉트릭 리터리처>,<캐터펄트>등에 꾸준히 글을 기고해왔다. 룰루 밀러의 논픽션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으로, 혼돈이 항상 승리하는 세계에서 꿋꿋이 버텨내는 삶에 관한 우화처럼 읽히는 경이로운 책이다. - 저자 프로필 중에서
혼돈과 질서, 근래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마주하는 단어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키워드가 혼돈과 질서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 혼돈과 질서는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개념이자 상황을 파괴하는데 필요한 개념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책의 키워드로 '신념'을 선택했다. 저자의 신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신념, 그리고 우리의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마치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의 신념은 안녕한가요?"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밤하늘의 별을 쫓는 것을 시작으로, 꽃, 자연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각각의 세계가 지닌 질서를 규명하는 일에 목숨이 달린 사람처럼 매달린다. 그의 시선이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곳은 어류였다. 그는 자신이 찾은 어류의 특징을 관찰하여 질서에 부합하는 위치로 분류한 다음, 하나씩 이름을 붙여나간다. 새로운 어류를 찾으려는 그의 집착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당대 알려진 어류의 1/5에 해당하는 어류가 그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물고기를 에탄올에 넣어 보관하고 이름표를 붙여 층층이 쌓아올리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그와 동료들의 노력이 엉망진창이 된다. 인생 최대의 혼돈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에탄올에 담긴 유리병이 파손되면서 표본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한 물고기는 결국 폐기처분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역전의 용사였다. 그는 질서를 향한 강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살아남은 어류 표본에게 이름표를 붙일, 절대 떨어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낸다. 바느질하기. 인간의 의지에 한계가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는 없어 보인다. 그만큼 강하고, 그만큼 공격적이었다.
저자 룰루 밀러는 자신에게 '너에게 특별한 의미는 없다'라고 말한, 그러면서도 생명에는 장엄함이 있는데 네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건 너의 어리석음이라고 말한 아버지에게 대들 수 있는 근거를 찾고 싶어 했다. 그녀는 지금 이곳에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한 안내자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선택한다.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뒤를 쫓는다. 그의 꼬리에서라도 자신의 삶에 필요한 희망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룰루 밀러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룰루 밀러는 그의 안내자에게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될까?
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만큼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전반부와 완전히 다르게 진행되는 후반부를 현장에서 두 눈으로 목격했으면 좋겠다. 인간이 지닌 신념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진실은 어떤 것인지, 진실의 끝에서 알게 되는 인생의 비밀은 무엇인지 룰러 밀러를 통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향해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 신념이라면, 파리 한마디를 잡는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지않았던 것도 신념이 될 것이다. 신념, 그 자체에 대한 엄청난 의문이 밀려든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또 어떤 범주들이 무너질 참일까? 구름도 생명이 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 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_265쪽
당분간 혼돈 속에 지낼 것 같다. 그렇지만 혼돈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기는 처음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재미있게 책을 읽었다. 신선했고, 독특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반박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혼돈을 떨쳐내기는 어렵겠지만 그녀의 외침 덕분에 기본적인 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소중하다고 얘기한 룰루 밀러.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이름을 기억할 것 같다.
이 책이 출간되고 여섯 달 뒤, 스탠퍼드 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변화에 관한 몇 마디,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