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를 할까요?
당신은 결국 그 자를 잃고 말 겁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녀석을 슬쩍 나의 길로 끌어내리리이다.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 파우스트 1/ p.24
괴테는 16세기에 살았다는 떠돌이 학자 파우스트에 대한 관심을 관심에서 끝내지 않았다. 전설적인 인물 파우스트는 많은 철학자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괴테는 존재에 관한 질문에 관해 답을 알고 있는 인물로 완성해낸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감히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파우스트'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이다. 그만큼 괴테의 작품 안에서 만나는 파우스트는 현실적이며 실재적이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자신의 생애를 바쳐 완성한 작품이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신비주의에 가까운 초현실주의와 수많은 신화 속의 인물과 철학자, 과학자가 등장하는 데다가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개연성이라는 것이 확보되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당시의 상황과 시대적 배경이 거기에는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이후의 인간 중심적 사고를 향한 추구와 기독교적 전통, 그리스 로마신화에 대한 열망이 한데 어우러져 갈등을 겪었다고 하는데,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자신의 대답을 준비한 것 같다.
파우스트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신과 악마의 내기가 벌어지고, 이후 신과 내기를 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삽살개로 변신하여 파우스트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실존의 문제에 부딪친 파우스트는 이성적 한계로 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열망을 이기지 못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인생이 어떤 건지 체험할 수 있도록, 모든 쾌락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얘기한다. 하인이건 종이건 무엇이든 되어준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에 파우스트는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묻는다.
" 이 세상에선 내가 하인 노릇을 하며 당신의 지시에 따라 쉬지 않고 일하겠습니다. 그 대신 저세상에서 다시 만날 땐, 당신이 네게 같은 일을 해주셔야 합니다."
"저세상 따위는 개의치 않네.
자네가 우선 이 세상을 박살 내 버린다면, 다음에 어떤 세상이 생겨나든 무슨 상관이겠나. 이 땅에서만 나의 기쁨이 샘솟고, 이 태양만이 내 고뇌를 비춰줄 뿐일세. 이것들과 우선 헤어질 수 있다면 그다음엔 무슨 일이든 될 대로 되라지..."
"계약을 하시죠"
...
"좋습니다"
"이건 엄숙한 약속이다"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땐 자네가 날 결박해도 좋아.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다!"
- 파우스트 1 p 95
이때부터 인간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본격적인 동거가 시작된다. 마녀를 만나 젊어진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헬레나를 불러내어 그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도 하고, 황제에게 도움을 주어 땅을 하사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레트헨을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헬레나는 죽은 아들 오이포리온의 뒤를 따르고, 파우스트는 땅을 개간하던 중 노부부를 죽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파우스트는 욕망이 이끄는 삶을 따랐지만 어느 것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파우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에서 파우스트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 흐름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여기 인생에 대해 한계를 느끼는 한 인간이 있다. 삶에 대한 회의감에 가득 둘러싸인 그에게 유혹의 손길이 다가온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한계를 넘어서도록 해주겠다, 모든 것을 맛보게 해주겠다.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피의 계약을 맺는다. 살아있는 동안 내 마음대로, 죽은 이후는 상관없으니까 내 영혼을 가져가라고 큰소리치면서. 우선 젊음을 회복한 그는 술독에 빠져보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권력을 가져보기도 하고, 환상이나 신비로움을 쫓기도 한다. 끊임없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그에게 어느 날 근심이 찾아온다. 자신이 옳았다고 주장하는 그에게 근심이 말한다. "인간이란 한 평생 앞을 보지 못하니, 이제 장님이 되세요"라고. 화가 난 그는 근심에게 저주를 퍼부었고, 결국 장님이 되고 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순간 인생의 비밀 하나를 발견한다.
"마음속엔 밝은 빛이 빛난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서둘러 완성해야겠다. 주인의 말보다 위력이 있는 것도 없으리.... 그 썩은 웅덩이의 물을 빼는 것이 마지막이자 최대의 공사가 되리라. 이로써 수백만에게 땅을 마련해 주는 것이니, 안전치는 않더라도 자유롭게 일하며 살 수 있으리... 위험에 둘러싸이더라도 여기에선 남녀노소가 모두 값진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군중을 지켜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백성과 살고 싶다. 그러면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 파우스트 2 , p.363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원받았다'라는 문장이 아니었다. 갈망하고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의 발견이었고, 행동하는 자가 얻게 되는 다양한 결과를 마주했다. 성공적인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한 문장은 없지만 개연성이 확보되지 않는 사건을 통해 오히려 존재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도전하고 방황한 파우스트, 그에게서 나를 본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