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부터 읽고 있는 책 중의 한 권이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이다. 다른 책에 비해 분량이 두껍지 않아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진도가 더딘 편이다. 아니, 솔직하게 표현하면 일부러 속도를 조절하면서 읽는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초등학교 교사, 심리 카울슬링 학위가 있는, 준비된 엄마 앤젤린 밀러의 고백에 대해 나를 투영하면서 읽다 보니 제법 읽었다 싶은데 몇 페이지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라는 제목 때문인지, 처음에는 상업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눈에 들어왔지만 일부러 외면했다. 하지만 5월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며칠 전 아이들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어버이날이 다가와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읽고 있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도 비슷한 이유인 것 같다. 5월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청소년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여전히 어린이로 여겨지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어린이날을 지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가족, 아이, 엄마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억제하지 못할 때면 나는 네 신발을 집어주고, 네 배낭을 져 나르고 네 교통 위반 벌금을 납부하고 네 상사에게 거짓말로 핑계대로 네 숙제를 해주고 네 앞길에서 돌멩이를 치우고 "내가 직접 했어"라고 말하는 기쁨을 네게서 뺏겠지"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첫 줄에서부터 걸음이 멈춰졌다. '억제하지 못할 때면'. 억제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찰나, 억제하지 못했던 어느 시절, 어떤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혹은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낸 장면들이 하나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앞에 펼쳐졌다. 후회로 남아있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지만, 결과까지 '잘 되었는지'는 미지수로 남은 여러 기억이 손을 멈추게 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인에이블러 Enabler에 대한 정의와 함께 질문 하나가 있다.
"당신도 혹시 인에이블러인가요?"
인에이블러는 '상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면서 스스로는 자존감을 높이고, 상대의 독립을 막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평소 내가 가장 경계하는 모습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내가 진실로 바라는 것이 '자립'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립, 아끼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자립을 희망한다. 홀로 서 있으면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삶을 바란다. 그런 까닭에 자립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되묻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경계를 하지만 언제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만큼의 경험은 쌓였으니까. 다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처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겨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과 행동을 다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돕는다는 것은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잘 되는 일'에 쓰임이 생겨나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