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방정환 선생님이 자신의 나이에서 1/3이 어린이래!"
"그래?"
"그러니까 엄마도 오래 살 예정이면, 지금 어린이 해도 돼!"
"그러까... 그럼 나... 150살?"
저녁을 먹을 때 나온 얘기이다. 내일이 어린이날이고, 올해가 어린이날 100주년이라는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러면서 두 아이 모두 어린이날에 대해 소신을 밝히는 중이었다. 아직 자신들은 어린이며, 어린이날을 맞이해서 뭔가를 기대하고 있음을 드러내놓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염치가 생겼는지, 우리까지 어린이날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음, 150살까지 산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어린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낯설어지는 요즘이다.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한 상황이다. 어린이를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너무 오래돼서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가끔 초등학교에 독서특강을 나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어린이'라는 단어가 쑥 내 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나는 어린이보다 '아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초등학교에 가면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말하기가 편한 아이, 질문이 넘쳐나는 아이, 한 줄을 채우지 못해 끙끙대는 아이, 친구에게 무엇을 쓰면 좋을지 물어보는 아이.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계속 물어보는 아이까지 많은 아이를 만났는데, 그러다 보니 기억에 남는 아이가 더러 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친구는 진짜 덩치가 산만한 아이였다. 중학생,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큰 덩치에 비해 말수가 없는 아이였는데, 집중력은 높았다. 수업 내내 눈을 마주치고,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야기 나누기를 끝내고 책에 대한 생각과 감상을 글로 옮기는 시간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한참 동안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중하면서 참여했던 태도가 인상적이었던 아이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한곳만 응시한 채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혹시 궁금한 거 있니? 막히는 거 있어?"
"아닌데요. 지금... 저 생각 중인데요"
아차, 싶었다. 아이들이 글을 쓰지 않고 있는 경우는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거나, 어딘가에서 막혀 혼자 답답해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글쓰기 하기 싫은데 억지로 붙잡혀 있을 때이다. 그중에 한 가지일 거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말을 건넨 것이 실수였다. '그랬구나. 생각 정리되는 대로 시작해'라는 말을 뒤로하고 자리를 옮겼다. 5분쯤 흘렀을까. 정말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족히 4문단은 되어 보였다. '어린이에게서 배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날도 딱 그러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다.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방정환 선생님을 주축으로 한 색동회가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했는데 그해 기념행사에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 배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100주념이 되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마음을 새롭게 다져본다. 조금 더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 되자고, 섣부른 판단의 경계하는 어른이 되자고, 특히 '아이'라는 세계,'어린이'라는 세계를 함부로 재단하는 어른이 되지 말자고.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충격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여기던 둘째는 혼란에 빠졌고, 학원 선생님이 던져 놓은 불안은 거센 속도로 뿌리를 뻗어 나갔다.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면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기를 기다릴까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옳은 선택도 친절한 선택도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수준에 맞춰 맞춤형으로 진행하는 학원을 찾아냈다. 아주 가끔 일 년 전의 선택과 불안을 잔뜩 안겨 준 학원 선생님이 동시에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둘째와 함께 보낸 300일이 떠오르고, 300일을 자축하며 둘이 껴안았던 추억이 생각난다.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옳다고 여기는 것과 친절한 것이 다시 충돌한다면? 다정하고 친절한 선택을 할까?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하고 둘째를 설득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다정하고 친절한 쪽에 더 마음이 가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란 쉽지 않으니까.
물론 불안을 잔뜩 받아드는 일도 각오해야 하겠지.
- 내가 좋아하는 동사들/ 살아가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