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좋은 다이어리

by 윤슬작가

“잊어버리려고 다이어리 쓰는데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질문이 쏟아진다.

“잊어버리려고 쓴다니, 그게 말이 돼요?”

“진짠데...”


다이어리 쓰기의 장점을 나열하라고 했을 때 다른 모든 것들을 젖혀두고, 나는 잊어버리기 위해 쓴다고 말해준다. 아무리 진짜라고 설명해도 표정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그때마다 다시 한번, 나는 다이어리의 장점은 ' 잊기 위해서'라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그러니까 ‘무엇을 해야지’라고 머릿속에서 기억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잊는 게 낫다는 방식이다.


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다이어리에 적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 학원비 결제라든가, 문자나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까지 최대한 상세하게 기록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날짜에, 일주일 뒤에 해야 할 일은 해당 날짜에 기록해둔다. 업무적으로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외부 강의도 마찬가지이다. 일정을 기록하고, 강의자료를 언제까지 완성하면 좋을지 해당 일자에 미리 체크해 둔다. 그러고는 잊어버린다.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어디선가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계속 상기하는 것이 도움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개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 확장해서 걱정하거나 매달리는 것을 사전에 막는다는 것도 좋았다. 그러니까 다이어리에 체크해두었다가 그날, 집중력을 발휘해서 마무리하는 게 정신적인 면에서, 업무적인 면에서 훨씬 더 낫다는 쪽이다. 종종 다이어리를 쓴다고 하면 주변에서 물어본다.


“어떤 다이어리 쓰세요?”

학교에 다닐 때는 작고 귀여운 다이어리를 썼다. 비닐 커버로 된, 계절을 알아차릴 수 있는 표지를 한 다이어리. 그때는 스티커로 다이어리를 꾸미는 재미가 컸다. 어린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나는 다이어리를 가지고 놀았다. 이런저런 스티커를 붙인 다음 감정이나 생각, 느낌을 짧게 적은 것이 전부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다이어리는 여전했다. 스티커도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솔직히 고백하면 스티커도 스티커지만, 수시로 다이어리를 바꿨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해가 되었다고 준비하고, 마음이 달라졌다고 커버를 바꾸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기념으로 다이어리를 그 자체를 바꾸기도 했다. 누군가 다이어리도 충동구매가 가능한지 물어온다면, 대답은 ‘yes’이다. 그것도 아주 넘치는 yes.


이것도 성장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티커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스티커가 사라진 다이어리는 사무적인 느낌 그 자체였다. 짙은 청색 커버의 시스템 다이어리였는데 사이즈가 제법 컸다. 성과를 내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준비한 다이어리 같은데 크기도 크고 제법 무거웠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두고 다녔다. 업무 시간에만 활용하기로 하고. 개인적으로 준비한 다이어리만 가지고 다녔는데, 문제는 아주 가끔이지만 가방 속에 회사 다이어리까지 함께 넣었다는 것이다. 몇 번 반복을 하다 결국 하나를 포기하게 되었다. 직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개인 다이어리를 포기했고, 곧바로 서랍행이 되었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업무용 다이어리에 적응된 탓인지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비슷한 커버의 시스템 다이어리만 구매했다. 기록하는 것이 많아지고, 조금 더 분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때 지인에게서 타공 다이어리, 그것도 제법 이름이 있는 브랜드의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유명 회사의 제품답게 구성도 좋고, 분류하고 관리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나의 취향을 저격한 다이어리였는데, 그때부터 계속 타공 다이어리를 활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타공 다이어리는 구멍이 뚫려 있어 중간에 새로운 페이지를 넣어도 되고, 어느 정도 분량이 되면 따로 모아 보관하면 된다. 다이어리를 통해 뭔가를 기록, 관리하려는 사람에게 타공 다이어리를 적극으로 추천해 주고 싶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고, 내지를 바꿀 수 없었던 나는 표지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종이 원단으로 된, 글씨를 적을 수 있는 재질의 커버를 지인에게 부탁했는데, 어찌나 솜씨가 좋은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요즘은 다이어리 종류가 다양하다. 기존의 다이어리 외에도 디지털 노트, 한정판 다이어리, 핸드폰 앱을 활용한 다이어리까지 수많은 다이어리가 준비되었다. 그래서 어떤 다이어리를 쓰는 게 더 나은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사이즈도 그렇고, 형식도 그렇고, 이게 가장 좋다는 것이 없어 보인다. 나에게 꼭 필요한, 내가 기록하고 관리하기 편한 다이어리가 제일 좋은 다이어리 같다. 대신 크기가 너무 크다든가, 조작하기가 어려운 경우 활용 빈도가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간혹 다이어리를 쓰다가 이제는 쓰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서 추천을 해주었지만 기능이 너무 많았다거나 항목이 너무 꼼꼼하게 기록, 관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만약 종이 다이어리를 활용한다면 너무 크지 않는 사이즈에 손이 잘 가는 다이어리가 좋을 것 같다. 무엇이든 조금 가볍고, 만만해 보일 때 시작이 쉽다. 부담감이 크면 지속하기 어려운 법이다. 어디에 쓰든, 어떤 다이어리를 사용하든 상관없는 것 같다. 쉽고 가볍게, 만만한,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잘 맞는 것이 제일 좋은 다이어리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