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더 많이 하려고 다이어리 쓰는 거 맞죠?”
한 번씩 내가 다이어리에 뭔가를 기록하고 있으면 궁금하다는 듯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짧고 간단하다.
“어...아닌데요”
다이어리를 쓴다는 행위는 맞지만, ‘더 많이’ 혹은 ‘더 바쁘게’라는 말은 틀렸다. 나는 더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 더 빨리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활용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일하기 위해,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다이어리를 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름 오랜 기간 다이어리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다이어리를 쓴다고 해서 갑자기 문제가 해결되거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갑자기 상황이 좋아지는 일도 생겨나지 않는다. 또 기록을 남긴다고 해서 없던 의미가 생겨나고, 행운이라고 여겨질만한 드라마틱한 일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쓴다는 것은 쓴다는 행위를 설명할 뿐, 그것이 어떤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다이어리를 쓸까? 나는 ‘알아차림’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거기에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도 함께 알려준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없는 것 같다. 일상은 조금만 방심하면 쓸데없는 일에 몸과 에너지를 빼앗기기 쉽다. 마음속으로 몇십 번 ‘해야지’라고 마음먹은 일이라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거나 뜻밖의 사건이 찾아오면 도망칠 궁리를 하게 만들거나 수동적 허무주의에 기대어 뒷걸음치기 쉽다.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되고, 미루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다이어리를 쓰면 어느 정도 점검이 이뤄진다. 우울한 감정과 협력한 아주 기묘한 날에는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꾸역꾸역 며칠을 기록하고 나면 협력관계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났다.
다이어리를 쓴다는 것은 수시로 자기 자신과 만남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이다. 누군가의 위로나 그럴듯한 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어리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과정적으로 알아차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어떤 날에는 이런 것도 해냈구나,라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바라보는 상황이 생겨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일까. 사람은 익숙한 것을 좋은 것으로 알고, 특별한 제약이 없으면 하던 것을 계속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다이어리에 기록을 쌓이기 시작하면 익숙한 것을 선택하기보다 더 나은 것, 보다 의미 있는 선택에 대해 저절로 마음이 향해진다. 그러니까 방향성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 뭐 하면서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면 다이어리 쓰기를 추천해 주고 싶다.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하루가 너무 정신없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에게도 해당될 것 같다. 쓸만한 게 없어도 괜찮다. 그냥 어디에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 시간을 기준으로 기록을 남겨보자.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그러면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하면서 보냈는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무엇을 해 보고 싶어 하는지. 본래 계획이 있었든, 없었든, 기록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때 가슴속에서 어떤 대답이 나오는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