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두고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글쓰기'이다. 글쓰기,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에세이가 될 것 같다. 에세이를 쓰거나 에세이 책을 완성하는, 에세이 작가로 살아가는 시간이 중심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글쓰기, 에세이 관련 책도 많고, 강의도 많이 있다. 강사도 많고, 관련해서 다양한 말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뭔가 보태는 행위를 할 때마다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에세이'라는 장르로 첫 책을 출간했을 때의 복잡한 감정이 떠오른다. 부끄럽고, 대견하고, 쥐구멍에 숨고 싶고, 어딘가 자랑하고 싶은.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면서 동시에 누구도 아는 척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수시로 교차했다. 처음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을 때 무슨 용기와 배짱으로 덜컥 '해 볼게요'라고 말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아마 나의 욕망을 알아차린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이름을 드높이고 싶다는, 극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낸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그렇기에 '출간'이라는 제안 앞에서 실력을 점검해 본다거나 깜냥이 되는지에 대한 검증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나를 내세우고 싶다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무모하지 않은 도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것이 2006년이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2022년,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글쓰기에 푹 빠져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는 중심 테마를 넘어 인생 테마가 되었다. 조금 더 디테일 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 코칭'이라고. 거기에 반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욕망의 재발견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 에세이를 통해 진정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욕심을 비웠다거나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정 부분 자리를 차지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그 너머에 있는, 미친 사람처럼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 더 분명해진 느낌이다.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희망하고, 추구하고 있었다. '에세이 쓰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한 명 한 명이 소중하며, 하나의 소우주이며, 다른 누군가와 혹은 무엇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개성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글을 쓰고, 에세이 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글을 잘 쓰게 되는 것도 중요하고, 일년에 한 권씩 책을 출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글쓰기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쓰임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아가 자신의 인생에게 선물할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라서일까, 요즘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판을 벌릴 수 있을까'에 자꾸 마음이 간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