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by 윤슬작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자습서보다 원고지나 노트가 더 친근했고, 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할 시간에 인생, 시간, 사랑에 관한 어설픈 시를 끄적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공모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아주 가끔은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만화책 100권을 최대한 빨리 읽기 위해서는 며칠이 필요할까, 한 권을 읽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필요할까, 글쟁이와 작가는 무엇이 다를까 등 엉뚱한 연구를 했던 것 같다. 하여간 어찌 되었건 읽고 쓰는 행위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어"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일을 시작한 친구와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아니 수시로 입버릇처럼 해왔던 말이기도 하다. 수업 준비로 정신이 없다가도 잠시 틈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저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가끔 함께 점심을 먹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현재형이 아닌, 미래형이었다. 아직은 너무 먼, 진짜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처럼 느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새벽, 아침에 혼자 책을 읽는데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 이미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생각 하나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러니까 이미 하루에 일정 시간을 떼어 '읽고 쓰는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출강을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부 커리큘럼이나 내용을 수정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일정 시간을 확보하여 '읽고 쓰는 행위'를 빠뜨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주말 아침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나도 모르게 툭툭 터져 나왔던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어'를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서 궁금했다.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못 했었지?


주말 내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고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하나의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읽고 쓰는 삶 = 작품 활동에만 집중하는 작가'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경제적인 걱정 없이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이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연장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현실적으로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를 알리는 일도 해야 했고, 나의 작품을 소개하는 일도 이어나가야 했다. 경제적인 부분은 배제할 수 없었으며, 가끔 방황하는 나를 다독이기까지 해야 했다. 그러니 '읽고 쓰는 삶, 작품 활동에만 집중하는 작가'는 내게 너무 멀리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말 아침, 조금만 시선을 바꾸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그 순간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지만, 나라는 사람을 알리는 일도, 유지하는 일도 병행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하루 일과 속에 '읽고 쓰는, 작품 활동을 하는 시간'이 배분되어 있으니 완전히 빗나간 이야기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일정한 시간을 확보조차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시간을 배분할 수 있다는 것과 비율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멀리 있는 뜬구름만 쫓는 것은 아닐까라는. 누군가가 그려준 그림, 세상이 맞춰놓은 퍼즐 속에 나를 집어넣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미 그 일을 해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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