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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전과 몰입이론이 만났을 때

by 윤슬작가

어쩌다 보게 된 영상이었다. 그녀는 가운데 빠른 손놀림으로 감자를 채썰기 한 이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하게 구워냈다. 가운데 구멍을 내는 것을 잊지 않았으며, 계란을 터뜨려 노른자가 봉긋 솟아오르게 하는 솜씨를 자랑했다. 마지막은 동그랗게 자른 피자를 주변으로 빙 돌렸는데, 바싹바싹, 씹히는 소리로 입안에 군침이 저절로 돌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길지 않은 과정 덕분에 영상을 보면서 '이건 나도 할 수 있겠어'라는 난데없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냉장고에서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감자를 두고, 언제 감자를 한번 쪄 먹자는 얘기도 기억하고 있던 터라, 잘 되었다 싶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가 오늘 아주 맛있는 감자요리 하나를 알아냈어"


첫 작품은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차마 사진으로 남길 수 없을 정도로 정체성이 불분명했다. 동그랗게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감자가 자기들끼리 잘 붙어 있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분위기였다. 계란으로 어떻게 협치를 이끌어내기를 했지만, 영상에서 보았던 노란 봉우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반죽 상태의 계란은 두어 번 뒤집기를 하면서 형체가 모호해졌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뒤로하고, 가장 중요한 맛을 살펴봐야 했다. 서둘러 남편을 불렀고, 반죽을 좋아하지 않는, 그렇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표정의 남편이 식탁으로 불려왔다. 열정 가득, 정성 가득에 오로지 바싹함만을 가지고 승부를 걸었다.


"음... 생각보다 맛은 있네. 반숙인데 의외로 괜찮은 것 같고, 그런데 모양이..."

"모양이 생각처럼 안 나오네..."

"프라이팬이 이상해서 그럴 수도 있어. 우리 집 프라이팬이 중간이 불룩하게 올라와서... 아예 계란 풀어서 해도 되지 않아?"

"그럴까? 그게 나을 수도 있겠네..."


1차 시식을 끝낸 후, 영상에서 만난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조금 더 자신 있게 진행할 수 있는 레시피로 형식을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만족도도 높을 것 같았고, 스스로도 프라이팬을 원망하거나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리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즐겁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걸리고, 걸리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더 집중력을 발휘하고,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싹함이었고, 형체가 불분명한 것보다 분명한 느낌을 선호했으니, 그것만 달성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성과라고 여겼다. 마지막으로 동그랗게 주변을 돌릴 수 있는 넉넉한 피자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며칠 전 샌드위치를 만든다고 모두 먹어버려 피자가 하나밖에 남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 여러 조각으로 나누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완전 감자전인데? 바싹하고, 피자 맛도 느껴지고 좋은데?"

"오우, 굿! 당분간 우리 집 메뉴는 이걸로..."


두 번째 작품을 앞에 두고 만족감을 드러내며 접시를 비웠다. 나는 요리나 집안일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할 때는 좋아하는 편이고, 몰입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 가지를 할 때 그 하나에 모든 것을 쏟는 스타일인데, 데코를 잘한다거나 완벽한 맛을 뽐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순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럴 때면 달리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몸에서 땀이 나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마치 그 일과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혼자 뚝 떨어져 몰입하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미하일 칙센트 교수는 '몰입 이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몰입 이론에서 단계적인 성장과정에 대해 설명하는데,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 몰입을 하는 게 아니라, 집안일을 하면서도 몰입할 수 있고, 업무를 하면서도 몰입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런 과정을 모두 거쳐 조금씩 우상향하며 성장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고, 그 안에서 삶에 대한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날의 내 기분이 그랬다. 감자전을 만든 것뿐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집안일을 한 것에 불과한데, 그 순간 속으로 온전히 녹아들었고, 몰입을 경험했으며,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모르게 '이게 행복이지 않을까?'라는 말이 터져 나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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