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위대하지는 않아요"
어쩌다 보니 지난주에는 비슷한 말을 여러 번 하게 된 것 같다. 글쓰기 수업 시간에도 나왔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에도 나왔고, 지인이 찾아와 건넨 질문을 찾는 과정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상황은 달랐고, 사람도 달랐고, 과정도 달랐는데 희한하게 종착지가 똑같았다. .평소 내가 많은 부분, 그러니까 글쓰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지난 주에는 여러 번 반복한 것 같다.
글쓰기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일흔이 넘은 분이었다. 밝고 명랑한 얼굴과 달리 그날은 굉장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선생님, 제가요.... 가게도 오래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서 말을 잘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글도 술술 나올 줄 알았어요. 오늘까지 몇 번 수업을 했는데, 몇 줄 쓰지를 못하겠어요. 진짜 예전에 제가 그랬거든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것 정도는... 했는데. 여기 계신 분 중에서 제가 제일 글을 못 쓰는 것 같아요. 아니 못 적는 것 같아요. 글쓰기 잘 하려면 많이 쓰라고 하는데, 이렇게 조금씩 적어나가면 저도 괜찮아질까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옆자리에 있던 다른 분이 약간 다른 온도에서 똑같은 질문을 건네오셨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 막 적고 있는데요. 그래서 양을 채우고 있기는 한데요... 근데 이렇게 하면 정말 나아질까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똑같은 질문이었다.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이 많이 쓰기, 마구 쓰기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하면 글쓰기 실력이 나아질 수 있나요?'였다. 두 분에게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 어떤 분은 독서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자신은 정말 많은 책을 읽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때의 대답도 비슷했다.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아니다'라고. 그러면서 함께 전했던 말이 바로 '과정이 위대하지는 않아요'였다.
본격적으로 글쓰기 실력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글을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얼마나 경험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독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른 행위이며, 다른 근육을 활용하고, 다른 방식으로 스며든다. 그러디보니 글쓰기를 할 때는 내 안에 얼마만큼 들어있느냐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깊이에서, 표현해서, 전개에서 '수준'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물론 처음 글을 쓸 때부터 격이 다른 수준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재능이라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솔직히 극소수이다. 대부분 쓰고, 수없이 여러 번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다. 그때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스스로 더 높은 수준과 경계를 요구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글 수준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글쓰기 강의에서처럼 예비 작가님들과의 모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고, '고쳐쓰기'를 향해 조심스럽게 나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쓰지 않았을 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 글을 쓰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설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동안,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맛보는 고쳐쓰기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지난하다면 지난한 시간을 반복하는 과정,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힘겨우면서도 끝내 도착하면 경험하게 될 희열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고백까지. 그러면서 우리는 입을 모았다. '과정적으로 위대한 것 같지는 않아요'라고.
여기에서 끝났으면 글쓰기에 한정된 거라고 여겼을 턴데, 어쩌다 부부 상담가가 된 것이 결정타였다.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배려 받지 못하다고 있다는 사실에 서운함을 토로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의무적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두렵다고 고백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모습이었는데, 그러면서 내게 질문했다. 작가님은 관계의 어려움도 없는 것 같고, 두 분은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사실 어렵다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언제부터인가 유사한 질문을 몇 번 받게 되면서 나만의 대답을 마련해둔 터였다. 그래서 그날도 약간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나름 분명한 모습을 취했던 것 같다.
"사실 저희는 건강한 부부에요. 사이좋은 날도 있고, 언성 높이고 싸우는 날도 있고 그래요. 늘 좋지 않아요. 예전에 훨씬 더 많이 다툰 것 같아요. 대신 그러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뭘 싫어하고, 어디까지 나아가도 되고, 어느 지점은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근데 삶이 반복되는 게 아니다 보니 늘 새로운 문제가 생기더군요. 그럴 때는 잘 해결되는 날도 있지만, 또 언성 높이고 싸우게 돼요. 그러면서 알게 돼요. 인정하기, 받아들이기, 그런 것들과 비슷할 것 같아요. 확실한 건 결혼은 절대 쉬운 게 아니에요. 사랑만으로 살 수도 없고요. 하지만 결혼은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고,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래서 노력해요. 건강하게 살아가려고. 오늘 좋지만, 내일 또 다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요. 다만 그건 내일 생각하려고요. 과정적으로 위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얘기 같아요"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