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은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는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할 만하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울산에 첫 발을 내딛고는 오로지 자신의 힘을 성과라는 것을 거두었다. 예전에는 6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대표였지만,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개인 시간을 활용하며 일하고 계신다. 골프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일주일에 1,2번 정도 골프장을 찾으시는데,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활동이다. 거기에 손주, 손녀와 통화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어릴 때는 자주 전화 통화를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조금씩 뜸해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신 걸까.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손가락이 자주 멈칫거린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다.
나는 아버지가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지금은 아버지에 대해 편안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맏딸, 장녀에게 거는 부모님의 기대가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대학 시험을 앞두고 집안에 문제가 붙들리다시피 군대에 가야 했다. 군대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공부만 했던 아버지에게는 마땅한 기술이 없었다. 아버지는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타고난 성실, 끈기가 발휘되기 시작했는데,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장상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였지만, 누구보다 공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강했다.
'그때 대학에 갈 수 있었다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더라면... 내 자식들만큼은 공부를 많이 하게 해줘야지...'
그 아쉬움이 고스란히 우리, 그러니까 나에게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희망을 품었다. 나에게, 나의 형제들에게.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가장 완벽한 그림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에게는 엄청난 슬픔이며 고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매달리셨다. 어려운 형편에 아버지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전기제품, 가구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필요하다면 금전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고, 장거리 통학에 힘들 것을 예상하여 일을 마치고 밤 12시에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못 이룬 꿈을 위해, 당신의 희망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는 24시간을 살아내셨다.
그렇지만 나의 24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컬러도, 색채도, 형태도 자유로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처럼 여러 방향으로 관심이 나아갔고, 어디로 가야겠다는 것 없이 공부를 강요하는 분위기에 힘겨워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항할 배짱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학교라는 공간에서 반항하고 방황했다. 초라한 성적표와 함께.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가 희망을 붙잡는 강도가 높아지는 만큼, 내 안에서 열등감이 높아지고 있었으니.
열등감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본값을 변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관념적인 사람이 되어 기본값은 탄탄해졌고, 합리화의 달인이 되어갔다. 이십 년을 훌쩍 넘기는 시간을 그런 방식으로 생활했다. 하지만 다행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의도는 그리 멋지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만화책 빨리 읽기로 시작된 책 읽기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뜻밖의 방향으로 진화했다. 스물 중반이 되면서부터 눈에 잡히는 책은 모조리 읽었다. 열등감을 파괴하고 싶어서, 존재감을 가지고 싶어서,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에 이끌려 붙잡았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고, 부러워서 읽기도 했다. 그때 무슨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겉멋이 들어 권수를 자랑하던 시절의 이야기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하여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책 읽기는 계속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서른을 넘기면서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파괴'가 아닌 '창조'로 눈길이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십오 년, 십육 년이 되었다.
오십을 눈앞에 둔 요즘 창조를 넘어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사색하기를 즐기고 있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열등감이 존재감으로 모습을 바꾸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나를 제대로 알아내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꿈꿨던 희망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희망을 위해서 살지 않았다. 희망에서 출발하여 오늘, 이 순간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