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공감이 제일입니다

by 윤슬작가

나는 가능한 '알아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걱정이 없다거나 불안하지 않다는 이유가 아니다. 다만 누구나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에 대한 하나의 태도 같은 것이다. 물론 '알아서'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부모 눈에 자식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오십을 앞둔 지금도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한다. 어떤 날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또 어떤 상황이 되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여러 해를 경험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쉬움이다. 이미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고,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있을 수도 있는데,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아니 어린아이 대하듯 '이렇게, 저렇게'를 언급하고 그 뜻에 따르기를 희망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당신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분별력이 있는 분이죠. 나는 당신이 쌓은 업적에 대해 대단히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의 우정에 대해서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불편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갑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어떤 때는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나는 그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 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삶의 한가운데, p.127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문장이 있다. 니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슈타인 박사에게 자신의 심정을 전한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말 없는 공감이 제일이라는 말과 함께,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존중받고 싶어한다고 얘기한다. 슈타인에게 보내는 그녀의 편지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머물던 기억이 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슈타인과 니나의 관계를 이해하는 텍스트였지만, 이후 몇 차례 다시 읽을 때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문장이 되었다. 부모, 가족, 친구, 아이들.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고마운 마음은 가득하지만 함께 있으면 불편함을 느낀다는 말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동시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를 떠올리면서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조금 일찍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네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로 마무리되는 제안이었다. 문제는 그 상황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두고 고민하던 문제였다는 점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출근한 길이었는데, 엄마의 전화로 인해 '해야만 한다'가 되어 버렸다. '아!'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애써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을 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슈타인 박사를 향한 니나의 고백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말 없는 공감이 제일입니다. " - 삶의 한가운데, p.127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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