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다이어리는 개인비서이다

by 윤슬작가

나에게 다이어리는 개인비서이다. 개인비서라고 하면 무엇이든 나서서 척척 진행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의 비서는 조금 다르다. 일일이 나의 손을 필요로 하고, 나의 노력을 요구한다. 상황을 정리하는 일에서부터 문제를 정의 내리는 것,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까지 모든 과정에 내가 참여해야 한다. 흔히 생각하는 기업이나 대표의 비서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이어리는 개인비서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닌다. 특히 업무용으로 움직일 때는 품목 1호이다.


내가 다이어리를 개인비서라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라이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날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 꼭 해야 하는 일, 여유가 되면 진행하려고 적은 일까지 목록이 적혀있다. 기억보다 기록의 힘이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나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해당하는 날짜에, 최대한 상세하게 적는 편이다. 그러고는 잊어버린다. 해당 일자가 되면, 그것을 해야 할 시간이 되면 충실하게 수행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하루 일과에 대해서도 그렇고, 한 달 후, 혹은 서너 달 이후의 일도 다르지 않다. 마치 비서에게 관련된 일을 일임한 것처럼 오늘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이쯤 되면 비서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두 번째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나 변수가 생긴 상황에서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나는 전날 잠들기 전, 다음 날 일정을 살펴보고, 대략적으로 시간을 배분해둔다. 일이 시간을 선택했다고 말해도 되고, 시간이 일을 선택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시간=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요하거나 긴급한 일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배분을 하는 방식으로 미리 예상하고, 여유 기간을 두고 준비하는 편이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나 당황하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상이 빗나가는 일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 구원투수가 있으니, 바로 다이어리이다. 언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지, 어느 시간까지는 잊고 지내면 되는지, 혹은 어느 시점에는 움직여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이어리와 협의 시간을 가진다. 성공적으로 잘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과 조건은 언제일지 살펴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혹은 순간적으로 기록했던 것이 필요할 때 언제든 펼치기만 하면 되니, 이 또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비서라면 맥락을 설명하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야 하지만, 인덱스를 통해 분류해 놓은 덕분에 '척'하고 펼치기만 하면 된다. 인덱스에 따라 사전에 분류해놓은 덕분에 만남도 쉽고, 정리도 쉽다. 무엇보다 인덱스를 자유롭게 수정, 변결할 수 있는 덕분에 마음이 변덕을 부리고, 행동에 변화가 생겨도 화를 내지 않으니, 어떤 날에는 감사할 정도이다.


비서가 어디까지, 얼마만큼의 일을 해내는지 자세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처럼,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목표가 아닌 사람, 선택과 집중을 통해 주도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다이어리를 비서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다. 기준에 의한 인덱스가 있어 필요한 기록을 언제든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시간=일'이라는 기준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시스템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자동화가 가능해진다. 어디서든 펼칠 수 있고, 즐겨찾기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셈이다. 이쯤 되면 비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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