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만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무모하다고 여기는 쪽이었다. 공부를 많이 했거나, 성공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지, 열정만으로 혹은 성실만으로 시도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마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늘 부모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할 때는 공부를 해야 돼. 그걸로 평생 먹고살아야 되니까. 그때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못난 삶을 살게 되니까"
애석하게도 나는 공부할 때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패로 보일만한 경험을 몇 개 가지고 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라는 압박은 부담이었고,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자유를 꿈꾸던 내게는 그것은 '보이지 않는 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공부를 할 때 공부를 하지 않았던 까닭에 존재감, 자신감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청춘'을 핑계로 오기를 부리는 방식으로 '내 것'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전사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생각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였다. 성공 경험도 없고, 자신감도 없으니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먼저 몸이 기울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앞으로 일어날 10가지 이상의 시나리오를 상상했고, 최고의 그림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먼저 그려냈고, 그 순간을 감정을 상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합리화했다.
'그래, 내겐 너무 무리야. 아직 준비도 안 되었고. 성공한다고 누가 그래? 실패하면 부끄러워서 어떻게 해?'
대상도 명확하지 않은데, 누가 볼 것인지도 모르는데, '어디선가 나를 볼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랬던 내가 참 많이 바뀌었다. 힘들어 보인다고 말하면서도 기획하고, 시도하는 모습에서는 똑같은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변화한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불구덩이까지는 아니지만 성공에 대한 어떤 보증서 같은 것을 들고 있지도 않은데, 어찌 되었건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나를 볼 누군가'도 사라졌다. 사실 보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볼 사람도 없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오랜 살아낸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한 것 같지 않다. 너무 많은 생각도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경험이 의견을 만들고, 의견이 바탕을 만들어내는 것일 뿐 경험은 경험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또 다른 경험이 쌓이면 또 다른 의견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의견이 만들어지면 또 다른 바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그때부터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겨났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상황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 소중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타인이며, 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누구를 위해 살아갈 필요가 없으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머릿속으로만 존재하던 '자유'가 조금씩 입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리더들의 모임, 에세이 코칭팀을 9월 개설하여 지난주에 첫 모임을 진행했다. 금요일에는 '리더들의 모임', 토요일에는 '에세이 코칭팀 1기'. 각자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살아갈 길을 디자인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픈에 앞서 인원이 모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여러 생각과 걱정이 밀려왔지만, 그때 생각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라고. '하고 싶다'와 '해 보고 싶다'에 집중하자고. 방향성 있는 성실, 진정성으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모임을 마치고 헤어지는데 즐거운 시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되돌려주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기억이 난다. 실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