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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을이 왔다, 우리에게 가을이 왔다

by 윤슬작가

얼마 전 모빌을 주문했다. '가을'을 연상시키는 종이 모빌이다.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모빌을 준비해서 담다의 책 위에 진열했다. 여름을 무탈하게 잘 보냈다는 의미도 될 것 같고, 다가오는 가을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는 바람이 큰 것 같다. 가을을 맞이한다고 해서 어떤 특별한 것을 해내겠다는 마음은 없다. 지난 계절은 함께 보내온 이들을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는 일에, 다가올 계절을 함께 보낼 이들에게 따듯함이 묻어나는데 작게나마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소망할 뿐이다.


새로운 공간에 둥지를 틀고, 낯선 것들에 대해 하나둘 적응해나가는 중이다. 문화라는 것도 만들어 나가는 중이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던 것을 하나씩 실행으로 옮겨보고 있다. 평소 심플한 것이 기준이다 보니 처음에는 삭막하다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를 떠올려보면 삭막했다기보다 딱 그만큼의 그림이 머릿속에 있을 뿐이었다. 봄이었고, 하얀 백지였으며, 이제 겨우 점을 찍고, 선을 그리면서 형태를 표현하기를 시도하는 단계였다. 급하게 채우겠다는 생각보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드러난 것은 허술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고, 가을 모빌을 걸면서 지나온 계절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롤모델이 있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누군가가 '이렇게'라고 말했다고 해서 금방 몸을 돌리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졌다. 나와의 합의가 중요했고, 내가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컸기에 시계의 방향도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몇 바퀴를 달려나가기도 했지만,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가 이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는 날이 많았다. 그랬던 사람이 가을을 맞이했다고 동심과 따듯함을 떠올리며 모빌을 장식하고 있다. 아주 분명하지는 않지만, 공간에 대한 정체성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가을이 왔다. 몇 권의 책이 '담다 출판사' 이름으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 채워질 담다의 책을 상상해 본다. 그 첫 번째 책인 "친애하고 침해하는"이 얼마 전 인쇄를 마치고, 물류센터로 이동 중에 있다. 그 뒤를 이어 일 년 동안 준비한 몇 권의 책이 가을이 오는 소리에 맞춰 몸을 들썩이고 있다. 가을이 와서 좋다. 아니, 가을을 맞이할 결과물이 있어서 좋다. 2023년 가을을 함께 준비한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담아 깊은 응원을 보낸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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