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잠깐만 뒤척여도 금방 눈이 떠졌고, 본능적으로 아이를 끌어와 무릎에 올려놓고,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지금도 아이들이 기억하는 자장가 몇 곡이 있는데, 역사를 쫓아가면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 낮에 무리하게 뛰어논 탓인지 열기가 남아있는 아이, 아주 가끔 목감기로 제 감기 목소리에 놀라 깨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내가 잠을 자기 위해 무의식 상태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주 오래된 얘기처럼 들려오는 그 시절, 내게 평온한 잠은 없었다. '한 시간만 마음 놓고 푹 자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면서 늘 궁금해했다.
"내가 이렇게 잠귀가 밝은 사람이었나?"
하지만 기억을 떠올려보면 결혼 전의 나, 그리고 지금 두 아이가 훌쩍 자란 요즘의 나를 보면 잠귀가 밝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머리를 대면 정말 잘 자는 사람이다. 캠핑을 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잠자리가 바뀌어도 꿈나라로 떠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가끔 맥주를 마신 날에는 코골이를 하여 '나는 코골이를 하지 않아'라고 말했던 장면을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면 몸이 아주 많이 피곤한 순간에도 2,30분만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원기가 솟아나는지 금세 에너지 만땅이 된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잠을 아주 많이 자야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이면 충분하고, 짧은 시간이라도 수면의 질이 좋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예외는 존재한다.
잠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잠을 설칠 때가 있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모두 들리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새벽 세, 네시에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질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몇 차례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난생처음 '잠'을 고민했다. "예전에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러지?"라고 새벽에 거실에 혼자 앉아 혼잣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내가 아주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잠에 대한 관한 고민도 비슷했다. '왜 이러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는 물고 독백이 이어졌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걱정하고 염려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알아내기 위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결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은 감정의 집을 지었고, 그것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즉 어느 순간이 마치 사진처럼 머릿속에 저장되어 계속 되감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을 정리해 보면 아주 간단했다. 한 마디를 제대로 전하기 못한 것이 아쉬웠고, 한 마디를 더 한 것이 화근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쉬웠고, 섣불리 몸을 움직인 것이 때론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거기에 상황이 다양해진 것도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의 삶에 작가, 편집자, 출판사 대표, 강사 활동이 더해졌으니 상황은 복합적이었고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여러 날의 고민 끝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기억이 난다. 일부러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낯선 상황에 나를 밀어 넣은 것이 누굴까, 복합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누구일까, 무엇보다 이 질문이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나에게 일을 더 안겨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해 보고 싶은데'라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말로 표현한 것이 여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도착했을 때는 진심으로 난감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이 순간을 넘길 문장은 뭐가 있을까? 머릿속이 바빠졌다. 몇 개의 서랍을 동시에 열어젖히는데 괴테의 메모가 보였다.
'이거다! 이제, 다시 잘 수 있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 괴테, 파우스트 중에서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