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벌어졌는데, 도무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낯선 이야기를 듣고, 한 마디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을 때도 있다. 일을 하다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도 있다. 알듯 말듯 하면서도 조금 더 정확하게 알고 싶은 궁금증이 생겨날 때가 있다.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나는 이렇게 말문을 연다.
"저,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백 퍼센트 몰라서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절반만 알아듣는 경우라도 해도 다르지 않다. 결국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인 셈이다. 그래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용기를 필요로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진심은 닿는다'라는 마음 하나로 조언이나 의견을 구한다. 다행스럽게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고백하니, 궁금증이나 걱정, 염려하는 것을 좋은 뜻으로 이해하여 대부분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제가 잘 몰라서..."는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자존감은 높지 않으면서 자존심은 강했다고나 할까. 약자는 실패자로 이해했고, 성공한 이들에게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며 질투의 화살을 아끼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아주 가끔은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에 안도한 것도 사실이고, 비교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면서도 이기적인 유전자는 상황과 조건, 환경을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그랬던 내가 약간의 홀가분한 감정을 느끼면서, 열등감, 비교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담고 생활하지 않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공감'의 역할이 컸다.
공감을 받았다는 것, 공감을 받고 있다는 것.
공감은 다른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기둥 같은 감정이기도 하다. 때로는 위로로 다가오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격려의 뉘앙스를 담고 있기도 했다. 가끔은 응원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그렇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었으니 기본적으로 나의 상황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가볍게 판단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힘을 낼 수 있었고, 힘을 뺄 수 있었다. 억지로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자존감을 온전히 경험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공감을 한껏 받은 덕분일까. 이제는 공감을 할 수 있는 힘이 제법 생겨났다. 내가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을 때, 내 마음이 단단하게 서 있을 때 공감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도 더불에 함께 배웠다. 물론 지금도 학습은 계속되고 있다. 똑같은 삶이 계속 반복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다른 삶을 살아가니까 말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