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자주 들려준다. 대부분 혼자만의 감정에 빠진 날들인데, 어떤 날에는 달콤함으로, 어떤 날에는 무던함으로 낮은 휘파람 소리처럼 들려준다. 하지만 결국 똑같은 의미이다. 큰 문제처럼 느껴지더라도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작은 일이라면 작은 것에 감사하며 제3자처럼 바라봐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나'가 될 것 같다. 계획을 짜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씩 관리해서 성과를 이루기를 즐기는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니 만족감을 느끼는 날이 많지 않았다. 어설프게 익힌 '겸손'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높게,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낮게 바라보는 기준이 되었으니 이래저래 슬픈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셈이다. 실수가 생겨나면 어쩔 줄 몰라 했고, 수습한다고 발바닥에 불나듯이 뛰어다녔다. 그 덕분에 작은 실수를 작게 마무리하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큰 실수로 만들어 결국 대형사고로 장식한 에피소드도 몇 개 가지게 되었다.
"잘 해야 돼!"
"어떻게 하려고 일을 이렇게 만들었어?"
"책임질 수 있는 일을 벌여야지!"
과정은 온데간데없고 결과만으로 나를 질책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젊어서 그랬다고, 청춘이라서 뜨거웠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참 많이 달라졌다. 세월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순간을 살고, 일생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위에 서 있다는 깨달음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과정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나'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게 되면서 예술가의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도 읽지 않는 것처럼 쓰고,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춤을 추는 그런 삶 말이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오늘도 나에게 들려준다.
하루 종일 노동자처럼 다이어리의 체크박스에 모든 엑스(x) 표시를 한 나에게.
열심히 준비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 앞에서 좌절한 나에게.
휴식에도 기준이 필요하다며 오늘 하루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면 선언하는 나에게.
별로 상관없다는 것 같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