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삶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by 윤슬작가

어쩌다 보니 대놓고 '죽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숨겨놓은 주제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히 '죽음'을 언급하지 못한 채 주변을 뱅글뱅글 꼬리물기를 하는 강아지같다고나 할까. 삶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내가 쓰는 글의 중심에는 죽음이 있다. 그분이 오셔서 나름 만족스러운 글을 썼다고 기분에 젖을 때도 그랬고, 도통 그분이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언제나 나의 시선은 '죽음'에 닿아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표현도 서툴러 문장은 심플하다 못해 단순했다. 은근한 향기를 품어낸다기보다 원하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라는 피켓을 들고 직접 소통을 시도했다. 죽음이 옆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죽음의 그림자가 그려놓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유한함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글보다 걸음이 앞섰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걸음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대놓고 죽음을 얘기하거나 유한함을 인식시켜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존재에 대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니까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과녁을 바꾼 셈이다.


하지만 사실 '삶'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루만지기엔 덩치가 너무 커 보였다. 그래서 '삶'이 아니라 '사람'으로 다시 한번 방향을 바꾸었다. 삶을 이야기하지 말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다짐했다. 비슷해 보여도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존재이고, 지금껏 각기 다른 선택을 추구한 까닭에 '차이'가 존재할 것이며, 그 차이를 그려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나의 이러한 변화가 좋은 선택이었는지, 과정이었는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여전히 많은 것이 현재진행형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사실은 머릿속에서만 끝내지 않고 열심히 끄적였고, 수시로 자판을 두드렸으며 몸을 움직였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은 선물이 아니라 역사에 가깝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매거진의 이전글오늘도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