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답다"
아주 가끔 친밀감을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제법 정확했으며, 그 사실 자체로 근사하다는 느낌을 얻을 때가 있다. 그런 날 나도 모르게 "그 사람답다"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정겨움의 표현이자 고마움의 화답이다. 여기서 '답다'라는 것은 하나의 스타일을 지녔다는 의미로, 형식 면에서는 어느 정도 완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존재로 보았을 때 고유함이 살아있으며, 안으로만 흐르던 것이 끝내 밖으로 흘러내렸음이다.
나 역시 '다움'을 추구한다. 내가 쓰는 글에서든,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에서든, 꿈꾸며 그려내는 세상에 대해서든 나의 고유함이 느껴지고, 꿈꾸고 추구하는 것이 드러나기를 희망한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어떤 관계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여러 방향으로 고민을 이어나갔는데 그날 나의 대답은 '말랑말랑함'이었다. 독한 구석이 없고, 부탁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거절하는 것이 어려워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나에게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랑말랑함이라는 단어가 유아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아 '유연함'으로 이름표를 바꿔달았다.
말랑말랑함이든, 유연함이든 결국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추구하는 삶은 갈대에 가까운 셈이다. 대쪽같은 선비정신으로 자라는 대나무가 아니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생에는 나라를 구하거나 큰 업적을 남기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불에 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대나무의 기질을 가지지 못했을뿐더러 유연함이 아니라 유약함이 되는 일이 순식간에 생겨나니까 말이다. 그러나 갈대의 모습은 가능할 것 같다. 바람에게 몸을 맡기지만, 뿌리를 포기하지는 않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번식하고, 주변의 수질을 정화시키는 갈대만큼만 되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계절에도 변화가 있고, 시간 속에도 밝고 어둠이 존재한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것이 언제까지나 동일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변화를 맞이할 것이며, 변화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면 형태가 점점 달라지면서 말랑말랑함 또는 유연함이 아닌 다른 모습을 꿈꾸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미리 그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떤 순간에도, 어떤 모습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볼 생각이다. 나는 기억한다. 정성스럽게 하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겉으로 드러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이내 변하게 되며 생육한다는 중용 23장을. 어떤 것이든 무시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어느 순간에서든 아주 잠깐이도 저 문장이 머리를 스치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