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한 가지는 정확하게 짚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두려움과 주저함으로 고민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한 권의 책을 낼 때마다 신인(新人)으로 거듭나기를 바라지만 매번 혁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균열이 생기거나 새로운 인과관계를 발견하는, 때로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만족한 날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든 크든 내적으로 일정 부분 합의가 생겨나면 그때부터는 삶의 동력이 된 것은 확실하다. 상상력이 되거나 추진력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순간을 두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면 완전히 빗나간 얘기는 아닐 것 같다.
나는 나의 가치관에 대해 수시로 질문을 가진다. 어떤 상황에 대해 즉흥적으로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기도 한다.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논거는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큰 것을 추구하는지, 화려한 것을 쫓고 있는지, 거창한 것을 욕망하는지 자체적인 커뮤니케이션 시간을 가지며 '~보다'가 되지 않기 위해 이성적 사고의 시간, 사색의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합리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해도 최종 작업이 하나 더 남아있다.
"그래서 네 마음은 어때? 감당할 수 있겠어? 도망가고 싶을 것 같아?"
자체적으로 명명한 '감정의 커트라인'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에 대한 마지막 질문을 거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머리에서 발까지 가려면 조력자가 필요한데, 내겐 마음이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까지 거치고 하면 그때부터는 가벼워진다. 어느 누구도 성과와 확률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스스로를 믿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주저함, 두려움에 대해서는 최종 절차를 거치면서 지나왔기 때문에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인생은 8할이 자신감이지!'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새로운 것 앞에서의 주저함은 누구에게나 생겨난다. 간단한 예로 코로나 백신이 나왔을 때, 백신을 맞을 것인지 맞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모두 달랐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도 서로 달랐다. 새로운 프로젝트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했을지도 재미와 압박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누군가는 과감하게 신청하지만, 누군가는 맞지 않은 일이라며 다음을 기약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100%는 없다는 사실이다. 51%가 있고, 49%가 있으며, 60%가 있고 40%가 있을 뿐이다. 어느 쪽으로 몸을 돌리느냐의 차이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51% 또는 60% 라면 과감하게 몸을 돌려보자. 100%의 자신감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49%의 주저함, 40%의 두려움을 안았을 뿐이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