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은 나의 날이 아니었다

by 윤슬작가

수능이라는 단어는 '나의 시대'에 해당되는 말인 줄 알았다. 비록 수능 첫 세대였지만, 어디까지나 그때에 해당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이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유효하고, 거기에 한 숟가락 더 얹어서 내년에는 첫째가 고3이 되면서 현실 엄마가 될 예정이다.


수능 시험에 관해서는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데, 딱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집에 와서 혼자 안방에 들어가서 방송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시험을 대단히 잘 쳐서가 아니라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뿐더러, 걱정은 되었던 모양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불분명한 느낌의 영상이 오래된 자료화면처럼 오랜 시간 내 곁을 맴돌고 있다. 후기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만고만한 성적을 유지하면서 더 공부에 매진했다면 좋았겠지만, 마음은 그런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성적이 잘 나올 이유가 없으매도 불구하고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TV를 시청했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일이다. 기억은 딱 그 장면에서 멈췄고, 이후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이다. 그저 약 한 달 뒤에 나온 수능 시험의 결과는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화풀이를 할 수 없을 만큼 정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내 인생에서 '수능'이라는 단어는 영영 이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십여 년이 흐른 2022년, '수능'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다. 그 옛날 늦은 시각까지 학교를 잘 지키고 있던 나를 위해 달려온 엄마, 아버지가 소환되는 순간이다. 이른 아침 도시락 몇 개를 준비하기 위해 서둘렀던 엄마, 몇 시에 퇴근하든 3,40분 거리에 있는 나를 위해 차를 몰았던 아버지. 보이지 않았던 몇 개의 퍼즐이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수능'을 바라보게 된다. 수능이라는 이름을 함께 끌어안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어떤 층위를 이루며, 어느 자리에 지키고 서 있었는지 새롭게 다가온다.


내년 2023년 11월 17일은 금요일이다. 그날 이 시각,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생각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고, 모성은 어떤 형태로 발현되고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물음표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수능을 치르던 날, 엄마는 분명 절에 갔을 것이다. 그러고는 열심히 기도를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자신의 노력이 시험 점수에 보탬이 되기를 기도하며 어느 날보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셨을 것이다. 수능 시험, 나의 날이라고 알고 살았다. 그런데 잘못 알고 있어도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이십 년이 필요했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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