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시작할 때, 10권을 내면 버틸 수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듣고 넘기면서도, '어쩌면'이라는 마음에 어떻게든 버텨보자, 그렇게 지내왔다. 누군가가 '끈기'가 있어야 가능했다고, '도전 정신'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힘을 실어주지만, 내가 보기엔 끈기와 도전 정신은 두 번째인 것 같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살아온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나온 길, 앞으로의 길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나고 나도 모르게 곁으로 자꾸 다가앉아 조심스러우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보통은 책에 관한 것으로 시작하는데, 끝에 보면 항상 '책'이 아니라 '삶'을 향했다.
"왜 책을 내려고 하세요?"
"책을 낸 이후에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으세요?"
글쓰기를 넘어 책쓰기로 이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그리로 흐른다.
거기에 출판사를 운영하다보니 '대표님'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사실 대표님이든, 작가님이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아는 분에게 묻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법을 찾는 시스템은 다르지 않다.
단 하나. 책임감이 늘었을 뿐이다.
책을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감.
완성된 책이 독자에게 잘 배송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
짧은 생각으로 "대표님=책임감"이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어쩌다 '대표님'이다.
사실 몇 년의 출판사 운영을 두고 출판업에 대해 뭔가 얘기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초보라고 해도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이라는 게 생긴 것 같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던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일이 더러 생겨났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출판업에 종사한 분들의 얘기에 따르면 책을 대하는 사람이나 출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사뭇 달라졌다고 한다. 뭐랄까. 과거에는 '책'이라는 것이 하늘 끝에 매달려 있었다면, 지금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도 비슷한 흐름 위에 있는 것 같다. 사실 고정관념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글쓰기는 재능이 있어야만 하는,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해 원칙이나 비결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직접 글쓰기에 관여하고, 수준이나 실력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관여하다 보니, 글쓰기 역시 하늘 끝에 매달린 것이 아니었다. 손을 뻗어 종이에 써 내려가거나 자판을 두드리면 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출판사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글쓰기로 끝날 것 같은 조짐이다. 의도하는 건 아닌데, 매번 이런 식으로 끝이난다. 수업 중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날도 기-승-전- 글쓰기로 이야기가 마무리된 적이 있다. 그때 수업에 참여했던 분들이 동시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무튼 작가님!"
대표님으로 불리면 좋은지, 작가님으로 불리는 게 좋은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어느 것이어야 할 이유도 없고,
어느 것이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좋은 출판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출판사는 단순하다. 좋은 책을 출간하는 곳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과정, 좋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담긴 책을 만들고 싶다. 판매 부수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될 것 같다. 판매가 잘 될수록 좋은 것도 많고, 어떤 경우에는 출판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씨앗 한 알 속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미생의 상태인 내가 할 일은 그저 씨앗을 하나라도 더 심는 일, 좋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 거창하게 마무되는 것 같아 살짝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내가 가져야 할 부담감이라고 생각한다.
대표님으로든.
작가님으로든.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