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게 부딪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앎'이 많아졌다는 것이리라.
요즘 첫째와 둘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뭔가 조금 더 아는 게 많아진 첫째는 둘째의 행동에서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많은 모양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학업에 매달려보면 좋을 것 같은, 친구 문제로 인해 불필요하게 애를 쓸 필요가 없는, 당장은 끈끈해 보여도 언제 끊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내려놓음까지. 첫째는 자신이 어렵게 배운 것들, 새롭게 깨달은 것을 둘째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 첫째의 마음을 모르는 둘째는 허공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느낌이다. 그 모습에 급기야 너무 답답하다는 투로 자리에서 일어서면 첫째가 한심하다는 듯, 큰소리를 내지른다.
어떻게 결론을 내면 좋을까.
그러고 보니 몇 차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첫째에게 해 주는 말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너도 그랬어. 너도 저 때는 그랬으니까, 이해해 줘"
"나도 알아. 나도 그랬지... 그래서 말해주려는 거지..."
"너도 답답하지? 근데 너도 그때는 잘 안 들렸잖아. 그치?"
"그러니까... 내가 얘기해주려고 하는 거지... 나도 그랬으니까..."
첫째의 답답함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옮고 그름이 분명한 아이,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 두려움이 없는 아이, 선생님에게 직접 찾아가 모르는 것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여러 번 생각하는 아이다. 어떻게 보면 소신 있고, 또 다르게 보면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인데, 그래서인지 삶에 대해 작은 깨달음이 생겨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특히 동생에게 더욱 그런 모습이다. 뭐라고 얘기하면 좋을까. 곁에서 지켜보면 꼭 '너만큼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혹은 너라도 조금 더 나은 선택이나 행동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모습이다.
한참의 실랑이를 마치고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한 마디만 더 하겠다는 첫째를 서둘러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첫째를 방에 들여놓고 나면 이제는 둘째와의 시간이다. 요즘 들어 둘째는 엄마, 아빠에 이어 누나라는 보호자까지 붙어 조금 더 간섭을 당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가 인생의 모토인 아이인데, 그 자유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부연 설명이 길어지고 있다.
"그런 말이 있거든. 지나봐야 안다는..."
"누나도 네 나이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보이는 게 있는 거야. 그래서 해 주는 말인 거, 너도 알지?"
"알기는 하지. 근데, 너무 보수적이잖아"
딸랑 3살 차이, 거기에서 보수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알 리가 없다는 것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와 누나가 네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너의 하루가 무해하기를, 너의 시간이 안온하기를, 너의 마음이 평온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 마음만큼은 의심하지 말아달라고. 그러다 보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인생의 중요한 비밀을 얘기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오히려 쉬웠던 것 같다. 뭉뚱그려, 한꺼번에 통째로 묶어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주면 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다른 문제라니까'라고나 할까. 분명 아주 작은 것들인데, 안경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봐야 할 만큼 작은 것들인데, 태풍의 눈처럼 크게 느껴진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첫째를 통해 경험했다고 여겨지는 것들인데 미세한 틈에서 완전히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그래서 안다고 말하기 어렵고, 모른다고 말하기엔 무책임한 상황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첫째를 키워봤다고 해서, 둘째라고 해서 쉬운 건 아니지 싶다. 첫째는 첫째라서 매일 마음을 고쳐먹어야 했다면, 둘째 역시 첫 번째라서 매일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는 것 같다.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