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추억이 한 장면씩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덜 바둥거려도 되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마음이 바쁘고 조급했는지 모르겠다. 내 시간이 조금만 더 생긴다면, 아이들이 조금만 더 빨리 커서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조금 더 머물렀어도 괜찮은데, 아이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조금 더 오래 바라봤어도 되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급한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미안함 마음이 생겨날 때가 많다. 딱히 어떤 거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아주 작은 상처를 떠나온 느낌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게 없었다. 교육이라는 것, 훈육이라는 것은 다소 추상적이어서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일을 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두 눈이 동그래지면 응가를 위한 준비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되었고, 빵집에서 생크림을 가리키면 집에서 식빵 위에 생크림을 발라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을 눈치채면 되었다. 유치원으로 마치고 집이 아니라 학교 놀이터로 걸음을 옮기는 날에는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는 신호라는 것만 놓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충분히 아름다웠고, 그런 행위가 때로는 자부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주 특별한 날에는 귀중한 연구 자료를 얻은 철학자처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불안함을 느낄 이유도 없었다. 가끔 남편이 '욕을 얻어먹으면서 버틴다'라는 말을 건네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했지만, 대부분의 날들 동안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두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에 바빴다. 채소를 이것저것 올려놓기만 했는데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이해하여 과감하게 포크로 집어준 아이들의 모습에 내가 아주 요리를 잘 한다는 착각을 하면서 보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긴 그때에도 소박하다면 소박한 꿈이 있기는 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 가끔 불만을 토로하기는 하겠지만, 남편이 기분 좋게 출근하고 퇴근하는 모습을 배웅하고, 첫째의 두 다리가 씩씩하게 하늘을 향해 발차기를 하고, 둘째의 두 팔이 철봉을 붙잡고 단 몇 초라도 더 붙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런 나의 바람이 길을 만들었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생소하다는 듯 말을 해온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내가 그렇게 행동했다고? 설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어릴 때의 추억이나 모습에 대해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러면 마음이 자란 것인지, 몸이 커버린 것인지, 모르는 척 넘기기도 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바닥까지 파헤쳐 상황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대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혼자 생각이 깊어진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추억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아닐까라고.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라고. 결과적으로 지나온 모든 순간이 반짝거렸음을 확인하는 게 아닐까라고.
from. 기록디자이너 윤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