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한계라고 여겨질 지점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일부 수긍하면서도 나는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노력의 힘을 믿는 사람이고, 그러다 보니 제일 자신 있는 게 ‘노력’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 경험하지 못한 일, 경계 너머의 일, 과감하게 선택해야 하는 일까지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마다 나의 선택은 한 가지였다.
‘일단 노력해 보자.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노력이라도 해 보자’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는데, ‘노력을 다하겠다’라는 다짐이 성공을 자신하거나 두려움을 완벽하게 극복한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관계는 없었다. 그저 나는 노력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마음을 편하게 했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럼이 생겨나지 않는 안정감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그 마음으로 쌓아온 것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웠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런 모든 순간은 경험으로 자리매김했고, 지나온 시간의 수많은 경험이 나를 여기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말이다.
늦은 저녁 아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날이었다. 유튜브를 보다가 상속세, 증여세가 궁금했는지 말을 건네왔고,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세금을 내는 것, 살아가는 것에 관해 이야기는 계속 확장되어 나갔다. 아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나의 경험으로 정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도 궁금증은 해소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얘기가 끝나갈 무렵, 아이에게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없단다.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어. 그럴 때는 한 번 더 해 보면 되는 거야. 엄마는 예전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정말 많이 했거든. 원망하고 자책도 많이 했고. 그런데 아니었어. 건강하잖아. 살아있잖아. 그럼 된 거야. 한 번 더 해보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많이 경험해 봐. 너에게 즐거움을 주는 경험도 해보고,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도 해봤으면 좋겠어. 엄마는 네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경험으로 배우는 사람은?”
“그래. 경험은 그 자체가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아. 경험은 오로지 경험일 뿐이지, 경험을 통해 의미를 찾는 사람이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지. 똑같은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도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 있거든. 둘의 차이는 엄마가 생각했을 때 어떤 의미를 발견했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 그저 여러 경험 중의 하나였다고 끝나는 사람이 있고, 이번에 무엇을 배웠고,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마음을 새롭게 먹는 사람이 있겠지. 선택이 달라졌으니, 이후의 행동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모습을 두고 경험으로 배운다고 말하면 될 것 같은데?”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모를 수 있어. 그냥 그렇구나, 한번 생각해보면 되는 거야”
이럴 때 보면 나는 조금 말이 많은 엄마인 게 분명해 보인다. 눈꺼풀이 내려오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얘기가 더 길어지는 것을 억지로 막아야 했으니 말이다.
경험주의자.
어느 순간부터 '저는 경험주의자예요'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사실 그 마음이 호기심의 원천이 되어 자꾸만 나를 다른 세상이나 사람들 속으로 이끌어 주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경험만 잔뜩 하다가 끝나는 게 아닐까 염려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다른 마음이 생겨나고 있다. 계속 같은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음 공간, 상태로 이동한다는 느낌이 생겨났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조바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이의 볼에 '사랑해'라는 말을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도 마음은 계속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축복이야. 많이 경험하고, 많이 사랑하고, 많이 느껴봤으면 좋겠어.’
form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